단순히 무(無) 막장 드라마의 성공사례라고 하기에,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를 어루만졌다.
'가족끼리 왜 이래'가 남긴 7가지를 초성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 가 : 가족들이여, 안녕들하십니까
우리는 가족다운 가족인가. 진짜 가족은 무엇인가. '가족끼리 왜 이래'는 고민 가득한 이 시대 가족들에게 정답지를 내놓는다. 주인공인 아버지 차순봉(유동근 분)이 이끄는 대가족을 필두로 재혼가정, 핵가족 등이 등장해 '진짜' 가족의 모습과 의미를 보여주는 것.
처음, 차순봉 가족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진 가정이었다. 오직 아버지의 내리사랑만 있을 뿐 서로 남보다도 무관심한 생활이 계속된다. 그러나 차순봉의 이유있는 불효 소송으로 해체 위기를 겪고 난 후, 가족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의 불편함, 극성 어머니의 모성애, 앙금이 쌓인 부부관계 등을 서로 소통하고, 용서하며 극복해나간다.
여기에서의 족(族)은 가족의 '족'이 아니다. 싱글족, 니트족 등 현대사회에 새롭게 생겨난 무리를 뜻한다.
'가족끼리 왜 이래'가 중년들만의 드라마로 끝나지 않고 전국민의 드라마가 된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롭게 나타난 20대~30대 청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또 이들 세대의 고충을 표면적으로만 다루지 않아,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차순봉의 장녀 강심(김현주 분)은 잘나가는 대기업 비서실장이지만 독신주의를 꿈꾸며 살아가는 30대 노처녀다. 그는 경제력은 있지만 사랑은 없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30대 여성 싱글족을 대표한다.
막내아들 달봉(박형식 분)은 변변한 직장없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 한심한 니트족이다. 그의 모습은 취업이 안돼 일하기를 포기한 20대 청년 실업자들과 꼭 닮아있다.
◇ 끼 : 끼 넘치는 배우들의 재발견
'가족끼리 왜 이래'에는 얼굴은 알지만 낯선 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차순봉 가족이 특히 그랬다. 차남인 냉정한 의사 강재 역은 배우 윤박이, 막내 사고뭉치 달봉 역은 제국의아이들 박형식이 맡았다. 가수 손담비는 강재의 아내 효진 역을 연기해 가족드라마에 도전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자기 몫을 잘 해냈다. 초반에는 '다소 연기가 어색하다'는 평도 분명히 있었지만 갈수록 자신의 역할에 물들어갔다. 특히 장편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윤박은 그 가능성을 증명해보였다.
윤박은 줄곧 차가웠던 강재가 아버지의 병을 알고 무너지는 캐릭터 변화를 매끄럽게 소화해냈다고 호평 받았다. 가수 이미지가 강한 손담비와 박형식도 각각 철없는 부잣집 외동딸과 막내 아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는 평이다.
삼남매의 아버지 차순봉은 희생적인 아버지상 그 자체다. 그는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언제나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다. 3개월 남은 생을 앞에 두고, 그가 적은 버킷리스트 목록조차 자신은 없고, 가족들 걱정만이 가득할 뿐이다.
차순봉은 불효소송으로 자신의 죽음을 대비한다. 외로운 노처녀 맏딸 강심에겐 맞선 100번을, 멀어진 둘째 아들 부부와는 3개월 간 함께 살기를, 자립해야 할 철없는 막내아들에게는 달마다 용돈 100만원을 제시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소망이라기에는 소박하기 이를데 없다.
그가 보여주는 모성애와 닮은 부성애는 '가족끼리 왜 이래' 모든 이야기의 처음과 끝이었다. 현실까지 파급력을 미쳐 바쁜 삶 한켠에 밀려난 우리네 아버지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 왜 : 왜 성공했냐고 물으신다면…
'가족끼리 왜 이래'의 성공은 깊은 가족 정서에 대한 공감에 있다. 어떤 가족드라마든 공감없이는 국민드라마가 될 수 없다. 여기에는 배우들과 제작진의 역할이 컸다.
출연 배우들은 역할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켰다.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캐릭터의 호흡을 잃지 않고 각 가족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나갔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위험성에도 제작진은 버리는 캐릭터 없이 모든 캐릭터에 각자의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해, '가족'이라는 주제에 맞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주요 캐릭터의 개별적인 이야기는 최종적으로 '차순봉'이라는 아버지에게 고였다. 이야기에 두께가 쌓이고, 중심이 흔들리지 않다보니 40%가 넘는 시청자들의 공감은 저절로 따라온 것이다.
'막장'은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의 인기 척도를 결정해왔다. '막장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했다.
'가족끼리 왜 이래'의 선택은 달랐다. 처음부터 '가족끼리 왜 이래'의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중반까지 드라마는 줄곧 20% 대의 시청률을 유지했다. 고정 시청자 층이 많은 주말드라마의 특성을 생각하면 독보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훈훈한 가족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시청률 반등을 위해 막장 요소가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가족끼리 왜 이래'는 끝까지 뚝심을 지켰다. 그리고 '착한 재미'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막장이 아니고도, 작품성과 시청률 모두를 잡을 수 있음을 당당하게 보여준 셈이다.
◇ 래(내) : 내 아버지, 내 자식 그리고 내 가족에 관하여
'가족끼리 왜 이래'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약간의 판타지는 있을지언정, 드라마는 현실 속의 우리 삶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내 아버지와 가족 혹은 내게 주어진 극적인 3개월의 시간. 누구나 한번쯤 그것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단절된 가족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가족끼리 왜 이래'의 성공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족끼리 왜 이래'의 열혈시청자인 주부 김미경(34) 씨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누군가에겐 감동으로, 누군가에겐 대리만족의 판타지로 다가왔던 것 같다"면서 "점점 평범한 행복조차 누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게도 가족의 따뜻함을 회복하고자하는 마음과 그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