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의 '여론조사 제안'은 승부수인가? 자충수인가?

비판 커지자 문 대표 측 "정치적 수사였다" 해명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3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전격 제안했다. 여당의 강행 처리를 막을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부적합' 의견이 지배적인 여론에 기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여야 합의를 깨트린 셈이라고 반발하며 16일 처리 방침을 재확인했다.


◇ "여론조사로 인준 결정" 문재인의 승부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본회의가 16일로 연기된 것은 이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대통령에게 누를 덜 끼치는 길을 찾기 바란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문 대표는 이어 "만약 우리 주장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여긴다면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기관에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를 청와대와 여당에 제안한다"며 "우리 당은 결과를 승복할 용의가 있고 이런 사안의 경우 국민의 여론이 답"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의 이런 여론조사 제안은 다른 지도부나 측근들도 몰랐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16일로 미루는 데만 성공했을 뿐,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인준 강행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승부수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에는 임명동의안을 상정해 처리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야당으로선 본회의를 무조건 거부하기도, 그렇다고 표결에 참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과의 표대결에서 이길 리가 없고, 무기명 표결에서 자칫 이탈표라도 나오면 처지가 군색해진다.

◇ '부적합' 의견 과반 넘어...여론에 기대 자진사퇴 압박

그렇다면 야당이 손에 쥔 카드는 자신들이 강제할 수 없는,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가 사실상 유일하다. 따라서 점점 높아지고 있는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합' 의견에 기대 주말 동안 여론전을 벌이며 정부 여당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으로 여론조사를 전격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민주정책연구원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세 차례 실시한 이 후보자 적합도 조사에서 '부적격' 답변은 1차 52.9%, 2차 53.8%, 3차 55.0% 등으로 과반을 훌쩍 넘겼다.

한국갤럽이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적합 41%, 적합 29%, 의견유보 30%로 나타났다. 앞서 1월말 실시된 같은 조사와 비교하면 적합은 10%포인트가 줄고 부적합은 무려 21%포인트가 늘었다. 여론의 기류가 부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야당을 무시하고 강행처리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대의정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국민의 여론을 들어보자는 것"이라며 "투기, 병역 등 갖가지 의혹을 갖춘 이 후보자에 대해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는데 새누리당은 과연 이런 민심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 여당 "여야 합의 파기" 반발하며 16일 처리 방침 재확인

이에 대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의 대표가 하루만에 말씀을 바꾼 점에 대해 정말 유감스럽다"며 "저희들은 16일 본회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당초 어제 합의대로 차질없이 추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반박했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헌법상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본회의에서 결정하기로 돼 있다"면서 "이를 배제하고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은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 것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국회의 고유 권한을 무시한 발상이다', '대선 후보도 여론조사로 결정해야 하냐' 는 등의 다양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한 마디로 의회민주주의를 거스르는 황당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그러면서 "충청 출신의 총리 출범을 대승적으로 인준해 달라"고 촉구했다. 문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했던 '호남 총리' 발언을 슬그머니 들고 나와 충청 민심을 자극한 것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의 대전/충남 지역 지지율은 청문회가 치러진 10일과 11일 이틀 동안 3.2%포인트나 하락했다.

◇ '자충수 비판' 등 논란 커지자 문 대표 측 "정치적 수사였다"

여론조사 전문가도 문 대표의 제안을 '자충수'로 평가하며 야당을 비판했다. 김갑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는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인데 툭하면 여론조사에 기대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야당 대표가 정치로 견제하는 게 존재 이유인 것이지, 여론조사로 손쉽게 해결하려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이 후보자는 이미 총리 후보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라며 "야당이 국회에서 이미 부적격 후보자로 간주하고 있는 이 후보자를 실력으로 저지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에 기대려는 야당이나 여론을 무시하는 여당이나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여론조사 제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문 대표 측은 '정치적 수사'였다고 해명했다. 문 대표 측 핵심관계자는 "진짜 여론조사를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며 "자진 사퇴하라는 국민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있는 걸 지적하고, 국민들한테 물어보라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야당은 전날 극적으로 본회의를 미루며 시간을 벌었다. 그렇다고 인준을 막을 마땅한 수는 없다. 여당은 강행처리의 부담을 덜고 16일 처리의 명분을 얻었다. 그런데 악화되는 여론으로 부담은 커진다. '해프닝'에 그친 여론조사 논란은 과연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 총리 인준을 둘러싼 여야의 정치적 대결은 본회의가 예정된 16일 오후 2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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