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증세없이 복지가 가능합니까”
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답변은 너무나 유명하죠.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
사실 지난 연말의 담뱃값 인상과 연말 정산 세금폭탄만 없었더라면 ‘증세 없는 복지’는 그저 정치인들이 표를 얻으려고 내뱉는 일종의 ‘공약(空約)’으로 넘겨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얕은 꾀의 ‘꼼수 증세’가 사람들의 등을 완전히 돌려버리게 한 거죠.
당당하다면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 왜 증세가 아니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도 왜 증세가 아닌지에 대해 솔직하고도 명확한 설명이 있었어야했습니다.
가뜩이나 ‘유리지갑’인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직장인들을 비롯한 서민층이 단단히 ‘뿔’이 나 버린 겁니다.
오죽하면 ‘정부에 세금 주는 것 같아 싫다’면서 담배를 끊겠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났겠습니까.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누리당 지도부는 곧 있을 재보궐과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면서 잇단 수습책을 내놓았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정직하지 않다”는 각각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은연중 박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과연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기 전에 우리가 할 도리를 다 했느냐를 항상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이것을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 대통령 발언의 전체 뉘앙스는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열심히 하면 ‘증세없이 복지를 할 수 있다’ 처럼 들립니다.
서민을 배려한 듯한 발언이었지만 정작 SNS에서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야구에서 ‘뜬금포’라는 게 있습니다.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는 팀에서 중요할 때는 안타 하나 제대로 못 치는 선수가 패색이 짙은 경기에서 나홀로 솔로홈런을 쳐 냈을 때를 두고 하는 말인데요. 박 대통령의 발언이 그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박 대통령 발언을 두고는 사정이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SNS에서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 된 건데요.
새누리당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일단 '재정이 어려우니까 경제를 활성화하자'고 했고, '한번도 증세 없는 복지를 직접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한 것이 단초였습니다.
SNS에서의 반응을 요약하면 간접적으로 말씀을 하신 적은 있다는 건지, 소신을 굽히고 ‘복지를 위해서 증세를 하겠다’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기’도 아니고...기사를 여러군데 찾아봤지만 저도 박 대통령의 발언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증세없이 복지를 축소하겠다는 건지, 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겠다는 건지 제발 이번엔 속 시원하고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주시면 안되나요. 정말 제 유체가 이탈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