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선거법 유죄, 항소심 재판부 판결문 봤더니…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가운데 1심 재판부가 무죄로 선고한 선거법 위반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근거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 전 원장의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는지 여부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선거법이 유죄가 된다는 것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곧바로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에 상당한 상처로 남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274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판결문 가운데 1/4가량인 65페이지에 걸쳐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분석했다.

◈ “심리전단 사이버 활동, 원세훈 지시 틀 안에서 이슈와 논지에 따라 이뤄져”

재판부는 우선 심리전단 직원들이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이 반영된 이슈와 논지를 지시체계에 의해 매일 시달받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기재된 주제와 작성방향에 부합하도록 각자가 맡은 사이버 영역에서 게시글, 댓글, 트윗 글 등을 작성했다는 설명이다.

재판에 출석한 국정원 직원들은 ‘사이버 활동은 원장이 지시한 틀 안에서 이슈와 논지에 따라 이뤄졌다’는 취지의 진술을 일관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활동의 주제와 방향이 엄격한 지휘명령체계에 따라 전해졌다는 점, 심리전단 직원들의 밀행에 의해 신속 정확하게 집행됐다는 점, 사후보고와 활동 전체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어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행위’로 판단했다.


◈보수우파 논객의 글을 확산시켜라... 다수 트위터 계정 이용 확산

심리전단이 작성한 글이 확산되는 과정도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심리전단에 하달된 명령에는 “아침에 ‘오늘의 핫이슈’ 지정해 지시”, “타임라인에 많이 들어오는 시간대를 집중”과 같이 특정 이슈관련 글에 대한 확산 지시가 포함돼 있었다.
특정 이슈의 글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심리전단 직원들이 각각 30~40개의 계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심리전단 전체 직원은 70~80명이었지만 이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된 트위터 계정은 716개에 달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법정에서 “사용한 계정은 30~40개 정도이다”, “통상 20~25개 정도의 계정을 유지했지만 계정이 갑자기 죽어버리고는 했기 때문에 새로운 계정을 다시 만들어 사용했다”는 진술을 했다.

재판부는 “심리전단 직원들은 꾸준히 일정한 양의 글을 게시하는 활동을 했고 내부적으로 하루에 게시해야 하는 건수에 대한 기준도 정해져 있었다”고 인정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확정된 2012년 8월 이후 선거 관련 글 급증

2012년 1월~12월19일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이버 공간에 전파한 트윗글 총 27만3192건중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혐의만 적용된 글은 43.9%,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된 글은 56.1%로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비중은 시간 흐름에 따라 분석해보면 2012년 8월을 기점으로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같은해 1~6월까지는 정치관련 글이 84%~97%로 압도적으로 많지만 7월부터 비중이 역전되서 이후 대선국면에서는 선거 관련 글들이 50~83%까지 치솟게 된다.

공직선거법 제85조 제1항은 ‘특정 후보자의 존재와 이를 인식한 행위’를 선거운동 개념 성립의 전제로 삼고 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후보라는 대선후보자가 특정되는 시점에서 선거관련글이 폭증했다는 점은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운동을 의식하고 사이버 활동을 벌였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2012. 8.20 대선국면 선거활동 증가는 원세훈 지시에 의한 것

재판부는 2012년 8월20일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심리전단의 선거관련 활동이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고 규정했다.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전달된 지시사항 취지가 종북세력 등이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수행을 방해하고 있고 제도권으로 진입하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 심리전 수행의 필요성이 국회의원 선거 및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더욱 요구된다는 점 등에서 일관되게 유지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엄격한 상명하복 체계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국정원장의 지시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일탈한 행위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대선 가까워질수록 트윗글 감소한다고 선거운동 아니라는 원심 판단 문제 있어

항소심 재판부는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트윗 글의 수가 감소한다는 점을 이유로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원심판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야당 의원들이 국정감사 등에서 심리전단 활동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감시를 강화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심리전단 직원들이 조심하는 차원에서 활동을 줄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비록 2012년 10월 이후 트윗 횟수가 감소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트윗 횟수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으며, 여전히 기존 사이버 활동과 마찬가지로 여당 후보자에 대해서는 지지하고 야권후보자에 대해서는 비방하는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며 심리전단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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