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위기 덮친 농가… "설 연휴 반납, 가족도 못만나"

"지금 비상 상황이니까 고향을 가고 싶어도 참아야죠. 농장 직원 모두 설 연휴를 반납했습니다"

설 연휴를 일주일여 앞둔 9일 오후 충남 당진군 고대면 '도뜰' 양돈영농조합.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불과 50m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쳤다. 추수가 끝나고 맨 땅을 고스란히 드러낸 논과 밭도 하얗게 얼어붙었다.

자동차로 굽이굽이 시골길을 30여 분 들어간 곳에 자리 잡은 농장 입구에는 '방역'이라는 큰 두 글자만 유독 선명히 걸려있었다.

'방역을 받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과 함께 농장 입구를 가로막은 방역 시설이 마치 군부대의 삼엄한 경비를 방불케 했다.

돼지를 2만 마리 넘게 키우는 번식 전문 농장 도뜰 대표 유재덕(57)씨는 그 안에서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과 늦추위가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충북 진천군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충청 지역을 휩쓸고 수도권 지역까지 오르내리며 전국적 현상으로 번질 기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린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어요. 일부 지자체는 양돈농가에 구제역의 책임을 돌리고 있어요. 구제역 판정이 나오면 살처분 비용까지 부담시키죠"

이뿐만 아니라 진천군의 경우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지역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고, 이로 인해 지역경제 침체의 책임 화살이 구제역 발생 농가로 돌아가기도 한다.

명절을 앞둔 유씨는 농장의 소독과 방역에 밤낮없이 매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농장 출입시 매번 샤워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외선 소독을 통해 철저히 외부와 담을 쌓고 있었다.

농장의 30여 명 직원들 역시 모두 설 연휴를 반납했다. 협력 농장 등 직원의 가족까지 1,000여 명의 생계와 희망이 자식 같은 돼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불편은 참을 수 있다는 유씨는 "2011년 구제역 때문에 3개월 합숙도 했다"면서 "그래선 안 되겠지만 구제역이 당진까지 온다면 직장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제역으로 설 연휴를 반납한 것은 이 농가만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구제역으로 돼지 8,639마리를 매몰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우성팜 대표 이상도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현재 남아 있는 돼지는 없지만 이동제한이 걸려 있는 설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했다"며 "사촌들도 오지 못하게 하고 혼자 차례를 지낼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9일 현재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은 모두 80곳. 경기 이천과 안성, 충남 천안과 홍성 등 중부지방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설이 구제역 전염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유재덕씨는 "바람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도 무시할 수 없다"며 "최근에 인근 지역인 홍성에 구제역이 발생했으니 언제 불똥이 튈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설을 앞두고 꽁꽁 얼어버린 돼지 농가들의 바람은, 구제역이 하루빨리 잠잠해져서 가족들과 만나 서로의 정을 나누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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