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디폴트 위기 확산… 국제금융시장 리스크 증대

저유가, 지정학적 리스크, 국내 정치요인 복합적으로 작용

올 들어서도 세계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저유가의 부정적인 면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부도 위기로 몰리는 국가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리스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디폴트 위험국이 증가하는 데는 저유가의 영향이 크다. 석유 의존도가 높은 일부 산유국들이 국제수지와 재정수입 악화로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까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수출의 70%를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까지 겹치면서 루블화 가치가 한 달 사이에 절반 넘게 떨어졌다. 7천3백억 달러가 넘는 대외부채 등을 감안하면 지금의 저유가와 경제제재가 지속될 경우 머지않아 1998년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사태가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은 피치사에 의해 투자적격의 마지막 단계인 BBB-로 평가됐고, 국가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의 가산금리도 6%포인트를 넘기며 신흥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베네수엘라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전체 수출의 95%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올해 최대 403억 달러의 외화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원유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태여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등 다른 많은 산유국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다. 1년 이상 내전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지난 5일 중앙은행이 사실상 외환시장 개입을 포기하고, 정책금리를 14%에서 19.5%로 올렸다. 그 영향으로 통화가치는 하루만에 무려 31%나 폭락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우크라이나 외채는 135억 달러에 이르지만 보유 외환은 64억 달러에 불과하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앙숙인 러시아가 30억 달러의 외채를 조기 상환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IMF 등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치적 요인에 의한 것이란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쉽지 않다. 국제금융센터 박미경 연구원은 “통화가치 하락과 러시아의 채무 조기상환 요구 가능성 등으로 올해 중 우크라이나의 디폴트 발생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스는 취약한 경제에 정치적 요인이 겹치면서 디폴트 위험에 몰려 있다.

1981년 EU 가입 이후 그리스는 거품 경제가 심화되면서 재정이 거덜 나고, 국가 부채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등 EU회원국과 IMF는 고통을 감내하는 구조개혁을 요구한 상태다. 그러나 총선에서 긴축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시리자가 승리함으로써 그리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시리자 정부는 그리스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등 EU 회원국, IMF 등과 협의를 벌이고 있지만 타결은 쉽지 않다. 만약 협상에 실패한다면 그리스는 EU 탈퇴의 길을 걷게 되고, 디폴트도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처럼 상당수 국가에서 디폴트 위험이 존재하면서 어느 한 국가의 돌발 악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다른 국가로 전파되고, 이로 인해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이 올해 예상 대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신흥국 자금이 급격히 이탈하면서 세계금융시장은 상당한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연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덕담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올해 금융 부문에서 전례 없는 변화가 예상되고,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당국은 물론 시장 참여자들 모두 면밀한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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