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은 꺾이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는 8일 치러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45.30%의 득표율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러나 축하의 시간은 짧다. 제1야당의 당대표는 늘 독배(毒盃)에 비견되는 고난의 자리였다.
문재인 신임 당 대표의 경우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무현계의 좌장격인 터라 첫걸음부터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그 첫 관문은 바로 당직 인선이다. 문 대표는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에서 "대표 취임 후 첫 인사에서 단언컨대 계파 계보의 'ㄱ'자도 안 나오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계파를 뛰어넘는 통합과 탕평의 인사를 미리 예고한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깊어진 계파 간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계파 '해체'를 공언한 문 대표 스스로 친노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가뜩이나 전당대회 경선 기간 친노 대 비노, 영남 대 호남, 노무현 대 김대중의 프레임이 부각되며 당의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막판에는 여론조사 합산방법 논란으로 '친노 패권주의'의 악몽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우리당의 변화가 시작됐다. 총선승리의 깃발이 올랐다"며 "이 순간부터 우리 당은 분열을 버린다. 변화의 힘으로, 단합의 힘으로 위대한 진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에서는 "계파논란을 확실히 없애겠다. 백마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면서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권에 경고한다.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다"며 "동지들과 함께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지켜내겠다"고 선언했다. 외부의 공통된 적(適)인 박근혜 대통령과 전면전을 선포함으로써 당 내부의 차이와 분열을 봉합하려는 구상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4.29 보궐선거도 문재인호의 순항을 가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전통적인 야당 우세 지역이지만 야권 후보의 난립으로 승리를 장담하기 쉽지 않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지키며 승산 높은 후보를 골라내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다. 문 대표의 경우 '계파'라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더 크다. 만약 친노 성향의 후보가 패한다면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
문 대표의 선출로 '도로 민주당'이 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게 된 점은 제1야당 입장에서는 분명히 다행스런 부분이다. 하지만 '친노는 강경하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건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다.
당장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으로 신임 지도부가 9일 국립현충원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는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는 화합의 행보일 수 있지만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는 금기를 깨는 '퇴행'으로 비친 것이다.
문 대표는 그럼에도 이날 선출 직후 기자회견에서 "전직 대통령의 묘소 참배 여부를 놓고 국민들이 갈등하고 국론이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분열과 갈등을 끝내겠다"며 두 전 대통령 묘소 참배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논란을 감수하더라도 중도와 진보를 아우르는 행보를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더불어 이런 통합과 혁신의 자세만이 내년 20대 총선 승리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자, 문 대표 자신에게도 다음 대선에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대세론'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최종 3.57%p의 격차는 향후 당 장악과 운영에 상당한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는 대의원투표와 국민여론조사에서는 1위에 올랐지만 당원투표에서는 최종 2위에 오른 박지원 후보에게 밀렸다. 친노와 비노의 '전면전' 성격으로 치러진 이번 전당대회 승리가 자칫하면 앞으로 당내 계파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