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
①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이갑규 ②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김영진 ③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④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
2005년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로 데뷔한 박연철 작가는 2007년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시공주니어)로 그해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이후에도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2010, 사계절)와 '떼루떼루'(2013, 시공주니어)로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연철 작가의 책이 스테디셀러가 된 비결은 뭘까. 박 작가는 "책마다 표현기법을 달리하고, 곳곳에 특정 이미지를 숨겨놓는 등 재미요소 넣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로보트를 B급 정서로 풀어낸 작품을 준비 중인" 그는 "기회가 되면 각설이를 주인공으로 한 책"을 만들고 싶단다.
▲ '어처구니 이야기'는 작가가 창작한 이야기지만 옛이야기처럼 자연스럽다.
특강할 때마다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그림책 어처구니 이야기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옛이야기 구조에 우리문화를 입힌 거죠. '어처구니'(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흙으로 만든 조각물)에 관한 자료는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없었어요. 박물관 학예사가 오히려 저한테 '자료를 찾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에요. 그래서 그림도 상상 속 이미지죠. 저는 등장인물 중에서 말썽꾸러기 손행자가 가장 애착이 가요. 손행자 캐릭터가 까불고 거짓말하는 아이의 본질에 가장 가까우니까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결말이 충격적이다. 망태 할아버지가 아이가 아닌 엄마를 잡아간 것으로 유추되는데, 이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지금은 반응이 제각각이에요. 입이 꿰매진 아이의 모습이 무섭다는 사람도 있고, 엄마가 잡혀간 것으로 유추되는 결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아이도 있죠.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겁주기 좋다는 엄마도 있고요. 훈육을 위해 만든 책은 아니지만 그만큼 재해석의 여지가 많은 거니까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건 바람직해요. .
▲'망태 할아버지가 간다' 뒷부분에 작가가 고마움을 표시한 꼬마친구 문찬이와 노벨 어린이집 친구들은 누구인가
그림책 작가를 준비할 때 '어린이책 작가교실'에서 같이 수업듣던 동료가 노벨 어린이집 원장이었어요. 데뷔작인 '어처구니 이야기'는 아이들의 사전 피드백 없이 출간했는데, 제 예상과 달리 대다수 아이가 책의 내용을 어려워해서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망태 할아버지가 간다'를 출간하기 전 노벨 어린이집 아이들한테 더미북(그림책의 가제본)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때 유일하게 문찬이라는 아이가 '망태 할아버지가 엄마를 잡아가는 게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엄마와 아이의 밀착관계를 틀어놓는 것에 대해 저 역시 두려움이 있었는데, 문찬이 덕분에 용기를 얻었죠. 막상 출간하고 보니 세상에는 문찬이 같은 아이가 많았어요. 하하
▲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는 판형과 내용 모두 독특한데.
하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워요. 책 모양이 문자도(글자를 그린 그림)가 그려진 병풍을 본땄는데, 아이들이 책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그 안에서 놀아요. 여기저기 숨은 피노키오를 찾으면서 즐거워하고요. 책에 대한 어른과 아이의 반응이 대조적이에요. 어른은 어렵다고 하고 아이는 재밌다고 해요.
▲ 책마다 표현기법이 다양한데.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무섭고 거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직판화와 꼴라주 기법을 썼어요. '떼루떼루'에 나오는 사람 형상의 목각인형은 제가 직접 나무를 깎어서 만들었고요. 실제 꼭두각시놀이에도 목각인형이 등장하니까 똑같이 나무를 오브제로 사용한 거죠.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에서 배경으로 쓰인 천은 천연 염색한 다음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이미지를 얹었어요.
직판화 배운다고 1년간 판화 공방을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목각인형도 조각도로 일일이 깎느라 완성하는데 1년이 정도 걸렸어요. 책마다 사용하는 기법이 다르니까 준비기간이 길지만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갈 때의 즐거움 때문에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게 돼요.
▲ 책에 글자, 숫자, 작가의 얼굴 등을 숨겨놓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를 제외한 세 권의 그림책에는 알게 모르게 모두 제 얼굴이 들어갔어요. '망태 할아버지'에도 올빼미 얼굴에 제 사진을 넣었다가 '무섭다'는 반응이 있어서 뺐어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방해가 안 된다면 이런 이미지를 넣는 건 괜찮아요. 그리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재밌으니까요. 아이들은 글자보다 그림으로 줄거리를 파악하기 때문에 그림이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더 효과적이기도 해요.
▲책마다 작가 소개가 다르고 독특한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고 싶었어요. '떼루떼루'에는 저를 이렇게 소개했어요. '내 얼굴은 푸른 수염이 나고 못생겼어요. 사실 내가 결혼을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아이들이 묻죠. '작가님은 왜 아이들을 잡아먹어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에서는 '너무멀어자세히안보면잘안보여 별의 왕'이라고 저를 소개했는데, 이 별의 이름은 올해 출간하는 책에 그대로 나와요. 스핀오프(spin-off)처럼 이야기를 확장한 거죠. 내세울 만한 약력도 없지만 생년월일, 출신학교, 대표작 등을 나열하는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 방식에서 탈피하고 싶기도 했어요.
작가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해요.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것, 숨바꼭질 하듯 특정 이미지를 숨겨놓는 것, 자기를 재밌게 소개하는 것 모두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수단이죠.
▲ 소재가 무궁구진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했나
저를 여기까지 이끈 건 그림에 대한 열정이에요. 어릴 적 저는 책 읽기 싫어하고 말썽만 부리는 아이였어요.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지만 학창시절 사생대회에서 한 번도 입상을 못했을 만큼 그림에도 소질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림책으로 밥을 먹고 있네요.
특강할 때마다 아이들한테 꿈이 뭔지 묻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얘기하죠. 제가 10년간 전업작가로 살아온 건 제 책을 사랑해준 독자들 덕분이에요. '박연철 작가님 책은 다 재밌어요', '박연철 작가 책은 믿고 살 만해'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힘이 솟아요.
박연철 작가의 작업실에 있는 책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이 꽂혀있다. 문장론, 심리학, 옛이야기, 우리문화 등 주제가 폭넓다. 박 작가의 독서습관은 그때그때 필요한 분야의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 심리학에 꽂히면 집단심리학을 탐구한 칼 융의 '인간의 상징'부터 미술치료 책까지 섭렵하는 식이다. 박 작가는 "칼 융의 책은 내용이 어려워서 완독하는데 1년이 걸렸다. 그래도 아이의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 꾹 참고 읽었다"고 웃었다.
▲ 해외시장 개척은?
'어처구니 이야기'와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각각 일본과 중국에서 출판됐어요. 아쉬운 건 중국에도 한국의 망태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고유의 존재가 있을텐데, '괴노인이 온다'고 너무 1차원적으로 해석했어요.
국내 그림책 시장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아요. 불경기 탓도 있지만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독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죠. 저 같은 경우 전업작가이다 보니 시장 상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성장세가 두드러진 중국시장과 전자책이 활로가 될 전망이에요. 좋은 콘텐츠는 어딜 가든 통해요. 전 세계 어린이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죠.
▲ 작품 계획은?
목표는 '1년에 한 권 이상 내기'에요. 올해 안에 '안녕 외계인'과 '진짜 엄마, 진짜 아빠'를 출간해요. '진짜 엄마, 진짜 아빠'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엄마들 피드백도 받았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기대해요. 로보트에 관한 그림책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원고작업 끝내고 스케치 하는데, 조악하고 키치적인 느낌이 물씬한 불량식품 같은 작품이에요.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를 동화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동화는 처음 쓰니까 저한테는 또다른 실험인 셈이죠. 저는 장날 흥을 돋우고 밥을 얻는 각설이 캐릭터가 흥미로워요. 기회가 되면 각설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 박연철 작가가 고른 '한 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