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 송 : FM 98.1 (06:00~07:00)
■ 방송일 : 2015년 2월 5일 (목) 오전 6:38-47(9분간)
■ 진 행 : 김덕기 앵커
■ 출 연 : 변이철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장)
▶ 오늘은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나오셨나요?
=. 혹시 영화 ‘허삼관’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 작품인데요.
영화 속에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피를 파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오늘 검색어 키워드는 피를 판다는 뜻의 ‘매혈세대(賣血世代)’와 ‘꽃노년’입니다.
▶ ‘매혈세대’와 '꽃노년'…. 요즘 젊은이들은 매혈을 기억하는 분이 많지 않을 거예요?
=. 예 그렇습니다. ‘매혈’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다 흥미로운 사진을 한 장 찾았는데요. 동아일보 사진부장을 지낸 전민조 작가의 ‘매혈인파’라는 1975년 작품입니다.
사진을 보여드릴 수 없어 잠시 설명해 드리면, 이른 아침에 서울대병원 앞에 청년들이 피를 팔려고 떼로 몰려와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전민조 선생님 이야기로는 그 시절에는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호구지책으로 피를 많이 팔았다고 하네요.
=. 아무래도 자신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낯선 주제보다는 더 공감이 쉽지 않겠습니까?
저는 ‘매혈’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인데요. 직접 매혈을 했거나 매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아무래도 ‘허삼관’이라는 영화가 더 친근하게 다가가겠죠.
▶ 매혈을 다룬 허삼관도 있고 또 국제시장에선 파독광부 이야기도 나오고 요즘 60대 70대 노년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가 많네요?
=. 그렇습니다. 우선 앞서 소개한 ‘허삼관’이란 영화 외에도 방금 말씀하신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국제시장’이 있죠.
이 영화는 곧 13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명량’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2위 기록을 넘보고 있습니다.
영화 ‘세시봉’도 오늘 개봉합니다. 1960년대 말 서울 무교동에 문을 연 통기타 라이브클럽 ‘세시봉(C’est si Bon·불어로 참 좋다는 뜻)’을 무대로 펼치는 이야깁니다. 포크송은 70년대에 20대였던 그러니까 지금의 60대들에게는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가수 최백호 씨가 미사리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사리’를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리는군요.
▶ 그렇다면 6070세대에게 익숙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 앞서 제가 오늘 키워드를 ‘매혈세대’라고 소개 드렸는데요. ‘매혈’이라는 어감에서도 전달되듯이 사실 고생을 많이 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 사는 문제, 또 자식 키우고 출가시키는 문제로 문화생활 할 여력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노년에 자신을 위한 문화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경우는 연극이나 공연 보다는 가격이 저렴해서 상대적으로 6070세대들의 접근도가 높은 문화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흐름을 읽고 영화 기획단계서부터 6070세대들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는 영화 제작자들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에 대박이 난 ‘국제시장’입니다.
=. 저도 재밌게 봤는데요. 원로 탤런트죠. 이순재, 박근형, 백일섭, 신구 씨 등이 출연하는 할아버지들의 배낭여행 프로그램입니다. 출연자들의 평균 나이가 77세입니다.
2013년부터 방송된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지금까지 유럽, 대만, 스페인편이 나왔는데요. 또 이번에는 요르단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거죠.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처럼 스펙터클하지도 않고 전개가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냥 할아버지들의 소소한 배낭여행 에피소드를 담았는데도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 6070세대가 익숙한 소재의 영화도 줄줄이 개봉되고 또 노인들이 배낭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큰 히트를 치고 있는데...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 전문가들은 6070 이른바 ‘꽃노년의 반란’이 시작됐다.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자식들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난 노인들이 본격적으로 자신 만의 행복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겁니다.
이순재(82) 씨는 ‘꽃보다 할배’에서 ‘꽃노년의 반란’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시 소개해 드리면요.
“나이 먹었다고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주저앉아버리면 순식간에 늙어버려요. ‘난 아직도 한다.’하면 되는 거예요.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쭉 가면 되는 거야.”
다시 말하면 나이 먹었다고 자꾸 뒤로 빠지지 않고 힘닿는 만큼은 젊은이들과 똑같이 해보겠다는 자의식이 강하다는 거죠.
젊은이들처럼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뭐 요즘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사이클을 타는 분들도 많이 계시죠. 또 영어공부를 푹 빠지거나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 그렇습니다. 사별이나 이혼으로 홀로 된 6070세대들이 자기 짝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이나 문화, 체육활동을 위해 많이 찾는 노인복지관에서 ‘핑크빛 만남’이 많이 이뤄진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요즘 캠퍼스 커플인 CC는 시들해지고 복지관 커플인 BC가 뜨고 있다는 우수개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 젊은이처럼 사랑에 푹 빠진 꽃노년... 보기 좋은데요... 당연히 재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겠죠.
=. 그렇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를 보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혼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집단은 60대 이상이었습니다.
홀로 됐을 때 재혼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을 보면 20대에서 50대까지는 모두 20% 선 아래였습니다. 그런데 60세 이상은 23% 그러니까 약 4명 중 1명이 재혼에 긍정적이었습니다.
실제 재혼에 나서는 꽃노년도 많아서요. 2013년 60~74세 재혼 건수는 6,571건으로 20년 전 (1,851건)에 비해 3.5배가 늘었습니다.
▶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정말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 같네요.
=. 그렇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스웨덴 작가의 작품인데요. 영화로도 제작됐죠.
여기에 “난 더 이상 팔팔한 구십 청춘이 아니거든.”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만큼 노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자신을 늙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요. 이게 핵심입니다.
문화와 스포츠 활동에 대한 욕구가 부쩍 커졌고 연애에도 관심이 많아 젊어 보이고 싶어 하고 구매력과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한 꽃노년과 긴밀하게 파트너십을 맺는 것.
그것이 앞으로 정치와 행정, 그리고 비즈니스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6070세대를 '매혈세대'로만 바라보던 부정적 인식을 빨리 털어버리고 진심으로 그들을 생기 넘치는 '꽃노년'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