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려도 '믿고 기다려주는' 특수학교 선생님

[그림책 작가로 산다는 것 ③]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두고두고 볼 만한 좋은 그림책이 많다. 하지만 '그림책은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견이 많고, 대중에게 그림책을 알릴 수 있는 자리가 적어 좋은 그림책이 그대로 묻힌다. CBS노컷뉴스는 창작 그림책 작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편집자 주]

기사 게재 순서
①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이갑규
②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김영진
③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④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김영란 작가. 사진=문수경 기자
"아이들이 선생님을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선생님도 아이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김영란(41) 작가는 지난해 5월 출간한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사계절)로 창작 그림책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였다.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이 책은 생각할 거리가 많다.

책의 주인공인 특수교육 선생님의 일상을 담기 위해 그는 1년 6개월 간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을 꼼꼼하게 취재했다.

그렇게 자주 보고 알아가면서 김 작가는 선생님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낯설어했던 아이들과도 익숙해져 서로 좋아하게 됐단다. 덕분에 그림 속 아이들의 표정 하나 하나가 살아있고, 이야기 구성이 탁월하다.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는 지난해 한국출판인회의가 선정한 제2회 우수편집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업이 더뎌져 출판사 편집자 분들이 고생 많이 했는데, 수상 소식을 듣고 제가 더 기뻤어요."

"아이들을 만나면 재미난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는 그는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이 진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을 차기작으로 구상하고 있다.

© 김영란 글·그림,《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사계절
▲ 특수교육 선생님을 책의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출판사(사계절)에서 '일과 사람'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제안했어요. '어떤 직업을 다룰까' 고민하다가 일반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선생님으로 일하는 동생이 '그럼 내 얘기 해봐?'라고 했죠. 이 책을 만들기 전에는 특수교육 선생님이나 장애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단순히 그림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저한테도 삶의 전환점이 된 거죠. 동생은 물론이고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취재하면서 인상깊었던 장면을 하나씩 그리다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이 완성됐어요.

▲ 그림과 글이 섬세하다. 취재를 꼼꼼히 한 것 같은데

취재는 2008년 가을부터 2010년 봄까지 1년 6개월 정도 했어요. 취재대상은 특수학교인 밀알학교와 동천학교, 동생이 근무하는 일반 초등학교 등 세 군데였죠. 2009년에는 날마다 학교를 찾아갔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 안에서 생활하고 봉사활동 하면서 수업 끝나면 선생님들과 인터뷰를 했죠.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기대하고 갔는데, 취재하면서 보니 일반학교와 다른 점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취재를 더 꼼꼼히 했죠. 특수교육 관련 책에서 접한 이론을 현장에 접목하고 싶어서 두 학기 동안 일반 고등학교(돌마고등학교) 특수학급 아이들한테 대학 전공인 컴퓨터를 가르치기도 했어요.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 말고는 어렵지 않았어요.

▲ 특수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땠나

아이들 모두 예쁘고 귀여웠어요. 사슴 같은 눈망을 가진 채린(가명)이는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졌고, 소영(가명)이는 처음에는 저리 가라며 낯설어했지만 나중에는 저한테 먼저 안겼어요. 제게 컴퓨터를 배운 고등학교 아이들한테서는 지금도 전화가 많이 와요. (아이들이)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적다 보니 애착이 많죠. 준석(가명)이랑 경선(가명)이 같은 자폐아는 자기 방식에서 약간 벗어나도 힘들어하고 소통이 잘 안돼요. 그런데 타인과 소통 부재로 힘들어하기는 어른도 마찬가지겠죠.

▲ 실제 만난 특수교육 선생님은 어땠나

선생님이 아이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이해하고 있었어요. 남들보다 습득하는 속도가 느려도 믿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선생님은 아이에게 1년 동안 선 긋는 법을 가르쳤어요. 제가 볼 때는 특별히 달라진 게 없는데 선생님은 '지금은 똑바로 그린다'면서 무척 행복해 했어요.

주변에서 '천사같다', '힘들겠다'고 얘기하면 선생님들은 '내가 행복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해요. 아이들 특성에 맞게 수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해요. '일을 즐기면서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선생님들이 책에서 자기 얼굴 찾는다며 왁자지껄 했어요. 아이들 모습이 실제와 똑같이 그려져 있으니까 뿌듯해 하고요. 책을 만들 때 하나부터 열까지 조언해준 동생, 그리고 이 책을 머리 맡에 두고 주무시는 엄마한테도 감사해요. 제가 아직 미혼인데, 그런 엄마를 보며 '아, 나도 엄마가 되어서 저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았어요.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잘 따라주지 않으니까 속상해서 화를 냈대요.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스스로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고 해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선생님도 아이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예요.

▲ 아이들과 가끔 만나나

© 김영란 글·그림,《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사계절
책 나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 적이 있어요. 진규(가명)는 키가 눈에 띄게 자랐고, 나머지 아이들도 몇 년 전보다 제법 의젓해졌더라고요. 글씨를 못 쓰던 소진(가명)이가 저한테 직접 쓴 손편지를 건넸을 땐 뭉클했어요. 그때 다시 한 번 깨달았죠.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줘야 겠구나.'

▲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문제점은?

가장 큰 문제는 국내에 특수학교가 몇 개 없어서 통학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많이 있긴 하지만 부모들이 '혹시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할까봐' 걱정돼서 못 보내는 경우도 많죠. 일반학교의 특수학급 선생님 같은 경우, 일반학급 선생님과 차별당할 때도 있어요.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스펙 쌓는 법 말고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들이고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 작품 계획은?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건 없지만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이 진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영화 '헬로우 고스트'처럼 외로울 때 보면 위로가 되는 작품이요.

< 김영란 작가가 고른 '한 컷' >

© 김영란 글·그림,《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사계절
"햇살이 비치는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오전 8시 50분 종이 울리니까 선생님들이 갑자기 계단으로 뛰어내려 가더니 현관으로 모였어요. 학교버스를 타고 교문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마중하러 나온 거였죠. 처음 보는 장면이라 새로웠어요. 제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등교 장면은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는 거니까요. 선생님들이 아이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면서 인사하고, 손 잡고 걷는 풍경이 잊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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