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승민 압승, 경고등을 읽어라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에 선출된 유승민(우측)-원유철 의원이 꽃다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2일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지도부 경선에서 새누리당이 결국 변화와 혁신을 선택했다. 이번 선거는 친박과 비박 주자간 대결로 초반부터 관심을 끌었고, 오히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선거보다 더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결과는 '확실한 변화와 개혁'을 내건 유승민 원내대표-원유철 정책위의장 후보가 전체 158명 중 149명이 투표한 경선에서 84표를 얻어, 65표에 그친 이주영-홍문종 후보를 압도적으로 제치고 당선됐다.


집권 이후 두차례나 친박계를 원내대표로 배출한 새누리당이지만,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과 맞물리며 3년차 만에 비박계에 바통을 넘겨준 셈이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결과적으로 체면도 구겼다. 당초 이날 예정된 국무회의가 하루 연기돼 박심 논란을 자초한데다, 국무회의 연기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은 여당의 의원총회에 참석해 표결까지 했지만 전세를 뒤엎지는 못했다.

지난해 서청원 의원이 김무성 대표에게 무릎을 꿇고, 이번에 이주영 의원마저 유승민 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자, 당내에서는 유승민의 승리가 아니라 대통령의 패배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또 음종환 전 청와대 행정관이 정윤회 문건파문의 배후와 관련해 사석에서 언급했던 김무성 대표의 수첩속 KY(김무성.유승민)는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대표-원내대표 투톱이 되는 반전이 이뤄졌다.

이번 경선의 승패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짝짓기 실패로 이주영 의원이 친박계 이외로 표의 확장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등 여러가지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청와대의 불통을 여당이 심판했다는데 있다. 정책의 난맥과 컨트럴타워의 부재 속에서 정부여당의 신뢰에 빨간불이 켜지자 당이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추락하고 당의 지지율도 휘청거리는 가운데 총선은 1년여 앞으로 다가오자 여당 의원들의 위기감이 표결에 반영된 것이다.

그동안 비선실세 개입의혹과 청와대 비서진의 사실상의 항명, 정책난맥이 속출하는데도 청와대는 인적쇄신 요구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실세 3인방 가운데 한 명만 청와대 내에서 자리이동했고, 교체가 예상되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여전히 청와대와 내각 개편 업무를 총괄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의 당청관계는 기존의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신임 원내대표단의 당선 일성도 "당이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확실하게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찹쌀떡 공조'를 언급해 당정청간 불협화음에 대한 불안감 해소에도 주력했으나,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경제수석과 함께 위스콘신 학맥의 선배로서 앞으로 증세와 복지 등 각종 정책에서 제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커 보인다.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정치에서 정당과 국회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집권여당일지라도 청와대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경선결과가 새로운 당정청 관계가 정립되고 대통령의 소통방식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다음 번엔 국민들이 심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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