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합리한 건보료 방치하겠다는 정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윤창원 기자)
정부가 소득 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혁을 연기하기로 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은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난 2013년부터 기획단을 꾸려 개편안을 마련했고 오는 29일 발표할 예정이었다.

정부가 기획단까지 꾸려 1년 반 동안 작업한 개편안을 발표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최근 연말정산 파동으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고소득자들에게 보험료를 추가로 물리는 내용의 개편안이 나올 경우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이같은 결정이 전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결정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중요한 결정을 청와대의 승인이나 지시없이 복지부 장관이 단독으로 결정했다고 믿기 힘들다.

청와대의 해명대로 복지부 장관의 결정이라면 이는 정책혼선을 초래하고 대통령의 국정개혁 의지를 거스르는 결정인만큼 문책을 해야 마땅하다.


그동안 추진돼온 건보료 개편안은 소득이 적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줄이고, 월급 이외에 금융이자나 배당 등 추가소득이 많은 직장인들의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편안대로 시행되면 대부분 직장인의 건보료는 그대로지만 월급 이외 추가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직장인 26만3000명은 평균 19만5378만원의 보험료를 더 부과받게 된다.

또 재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직장인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보험료를 내지 않던 19만3000명도 13만746원의 보험료를 새로 내야 한다.

이렇게 보험료가 오르는 세대는 2.8%에 불과한 반면 부당하게 많은 부담을 떠안았던 저소득 자영업자의 27.2%는 보험료가 낮아지는 혜택을 보게 된다.

지난해 퇴임한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자신은 많은 재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가입자인 부인의 피부양자로 자동등록돼 건보료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며 건보류 징수체계의 문제점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지난해 생활고로 자살했던 송파 세 모녀는 지역가입자였고, 성·연령. 전월세를 기준으로 산정된 보험료로 매달 50,140원을 납부해야 했다.

이보다 더한 사례도 셀수없이 많다.

불공평하고 황당한 사례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작업이 중단 위기에 놓이면서 건보료의 형평성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필요한 개혁을 중단하게 되면 다른 개혁의 동력까지 잃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지방재정 시스템 개편, 보육·교육정책 개선, 노동시장 개혁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공무원 연금개혁은 물론 노동 교육 등 다른 분야의 개혁도 관계 당사자들의 희생과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건보료가 오르는 고소득자 45만 명을 의식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혁을 유보한 박근혜 정부가 과연 4대 부문의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잘못을 개선하려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채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인다면 4대부문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힘들어지고 대통령의 국정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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