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표시 테이프로 칭칭 감겨있는 놀이기구가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이 아파트에 설치된 놀이터 7개 중 4개는 이렇게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또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 찾아가보니 놀이기구가 아예 하나도 없이 텅 비어있다.
"엊그제만 해도 놀이터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우리 동네에서 이 아파트 놀이터가 기구도 다양하고 재밌었는데…"
놀이터를 찾은 김병찬(11) 군은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한 채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 문을 닫는 놀이터가 늘어나게 된 건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부터다.
법 규정에 따라 시설 설치검사를 받지 않거나, 검사 결과 불합격 판정을 받은 놀이시설은 이용 금지(폐쇄 조치)된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규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된다.
시설 검사를 받지 않아 폐쇄 조치가 내려진 놀이터는 대구 지역에만 28곳(1월 26일 기준)에 달한다.
놀이터가 사라진 또 다른 아파트에서 만난 박진석(13) 군은 "사실 놀이기구가 위험하기보단 아이들이 위험하게 노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잘 뛰어 놀았는데 갑자기 놀이시설을 없애 짜증난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놀 곳이 사라진 아이들이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파트 주민 정미경(39) 씨는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놀 곳이 없어져 걱정된다. 안 그래도 아이들 노는 공간이 많이 없는데다 차량이 지나는 도로뿐인데 밖에서 놀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지나"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아파트 입주민들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놀이터 설치 검사 기준이 안전성보다는 놀이기구의 자재, 규격 등에 맞춰져 있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최근에 지어진 멀쩡한 놀이터도 시설 설치 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국아파트입주민연합회 김원일 사무총장은 "설치검사이기 때문에 멀쩡한 놀이시설도 설치기준에 맞지 않아 폐쇄 또는 교체돼야 한다. 멀쩡한 놀이시설을 부수고 다시 비용을 들여 새로 지어야 하니 주민들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놀이터를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4,000~6,000만 원에 이르는 놀이터 교체 비용이 큰 부담이다.
자치단체의 지원이 있긴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쥐꼬리 지원에 그치고 있다.
올해 대구 남구청의 공동주택 관리지원비는 5,000만 원이 고작이다. 또 북구청은 지난해 놀이시설 교체 등에 약 1억 4,000만 원을 지원했지만, 주민들이 요청한 17억 원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북구청 관계자는 "아파트 수가 많은 것에 비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구마다 재정자립도에 따라 예산 규모도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자치단체들이 손을 놓으면서 놀이터 교체 비용은 고스란히 아파트 입주민들 몫이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입주민 사이에서도 돈을 들여 새로 놀이터를 짓자는 쪽과 폐쇄시키자는 의견이 분분하다.
안전이 아닌 비용 문제로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사라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