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입니다. 바클리(52) 역시 198cm의 신장에도 2m대 장신들이 즐비한 미국 프로농구(NBA) 골밑을 지배했습니다. 바클리는 역사상 최고의 슈팅가드로 꼽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2)과 같은 키의 파워포워드로서 N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그런 현 위원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꼽히는 선수가 고양 오리온스 이승현(23 · 197cm)입니다. 현 위원과 같은 고려대 출신인 데다 105kg 당당한 체격의 위력적인 골밑 플레이로 대학 무대를 평정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신인 1순위로 프로에 데뷔한 '두목 호랑이'는 '제 2의 현주엽'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현 위원은 최근 후배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승현은 '제 2의 현주엽'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과연 그 이유와 속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승현, 이규섭과 더 비슷하다"
현 위원은 "승현이의 플레이를 보면 나보다는 오히려 규섭이에 가까운 것 같다"는 답을 내놨습니다. 역시 현 위원의 대학 후배이자 한국 농구계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이규섭 서울 삼성 코치(38 · 198cm)를 꼽은 겁니다.
이 코치 역시 고려대 시절 센터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2000-01시즌 전체 1순위로 삼성에 입단한 이 코치는 슈팅까지 장착, 신인왕과 함께 팀 우승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후 이 코치는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에 슈터가 맞다고 판단, 주로 3번 스몰포워드를 맡았습니다. 2007년 10월31일 울산 모비스전에서 8개를 넣는 등 07-08시즌 경기당 3.1개의 3점슛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골밑 플레이가 다소 부족하다는 뜻도 포함됐을 겁니다. 현 위원은 현역 시절 장신 토종과 외국인을 마다하지 않고 골밑을 휘저었습니다. KBL 초창기는 외국인 선수의 신장 제한이 있어 키 작은 용병들은 현 위원을 막기가 버거웠습니다.
현 위원은 KBL에 데뷔한 1998-99시즌 내외곽을 가리지 않으며 평균 23.9점 6.4리바운드를 올렸습니다. 상무 입대 전까지 20점 안팎의 득점과 5~6개 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무릎 부상 때문에 제대 후에는 리바운드 대신 도움 수치가 올랐습니다.)
▲이승현, 애매한 위치에 제 색깔 잃어
이승현은 그러나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존재감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득점 1위 트로이 길렌워터와 짝을 이뤄 주로 외곽에서 하는 플레이가 읽히면서 오리온스도 부진에 빠졌습니다. 골밑과 바깥,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특히 외국인 센터가 빼주는 패스를 받아먹는 평범한 외곽 슈터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승현은 강력한 후보였던 신인왕 경쟁에서도 연세대 라이벌이던 삼성 김준일(23 · 202cm)에 밀리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신장과 힘 등 나름 경쟁력이 있는 자신의 장점을 잃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하지만 이승현은 쥐는 힘인 악력에서는 신인 중 2위입니다.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겁니다. 현 위원은 "승현이는 골밑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면서 "대학 시절에는 백보드를 장악했지만 프로에 와서는 외국인 선수들이 있어선지 조금 위축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순발력과 스피드는 흔히 타고난 신체적 능력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 위원은 "승현이가 골밑 기술을 더 갖춘다면 상대 3번 포지션이 막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라이온스 합류 뒤 골밑 역할 확대
그랬던 이승현은 차츰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최근 4경기에서 모두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리바운드도 6개 이상을 잡아냈습니다. 3승1패 팀의 반등을 이끄는 동안 3점슛은 단 1개였습니다. 그만큼 골밑에서 역할이 컸다는 뜻입니다.
특히 리오 라이온스가 이적해온 이후 이승현도 살아난다는 평가입니다. 라이온스는 공격은 물론 패스에도 능해 이승현과 하이 로 게임이 위력을 떨친다는 겁니다. 여기에 이승현도 차츰 3번과 4번을 오가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23일 인천 전자랜드 원정에서도 이승현의 진가가 나왔습니다. 골밑을 집중 공략하며 승부처였던 후반에는 14점을 몰아넣었습니다. 모처럼 골밑에서 성난 호랑이가 된 이승현의 위력에 장신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베테랑 이현호(192cm)도 애를 먹었습니다. 이승현은 학교 선배이자 신인왕 출신 이현호와 상대 외국인 리카르도 포웰(196cm)을 상대로 신장과 힘의 우위를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상민 삼성 감독은 김준일과 이승현을 비교해달라고 하자 "포지션이 달라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면서도 "김준일은 득점력이 좋고, 이승현은 농구 센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은 "김준일은 확실한 센터고 이승현은 활용도가 높다"고 했습니다.
최근 한국 농구에는 잠재력이 풍부한 빅맨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오세근(200cm · 안양 KGC인삼공사)와 최부경(200cm · 서울 SK), 김종규(207cm · 창원 LG) 등 최근 3년 연속 신인왕을 장신이 휩쓸었습니다. 여기에 올 시즌 이승현과 김준일까지 가세해 KBL을 더 풍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승현은 이들에 비해 신장의 열세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충분히 이겨낼 힘을 갖추고 있는 점도 분명합니다. 2m 거인들을 힘과 기술로 맞서는 빅맨은 농구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입니다.
p.s-이규섭 코치는 절정의 슛 감각을 자랑하던 07-08시즌 "예전처럼 골밑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된 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외곽 슈터로 변신해 골밑 본분을 잃게 된 데 대한 후회였습니다. 당시 한국 농구는 장신들의 슈터화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노 메달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코치는 성공한 슈터로 KBL 역사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승현이 이 코치의 길을 가기에는 갖춰진 체격과 힘이 아쉽습니다. 여기에 이 코치만한 스피드는 다소 떨어집니다. 현 위원은 "이승현이 제 2의 현주엽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는 자신과는 다른 재능이 있다는 뜻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제 1의 이승현'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