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연말정산의 수렁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0일 분할납부와 출산 공제제도 부활 등을 내용으로 하는 13월의 세금폭탄 대책을 내고 여야 정치권이 법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연말정산은 국민들 이해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와 박 대통령의 이런 불끄기에도 불구하고 13월의 세금 폭탄 파문은 계속되고 있으며 직장인들의 분노와 불신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사실상의 직장인 편법 증세를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반발에서부터 납세 거부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엔 청와대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5,500만원 이하 소득자의 세 부담이 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가 “독신 가구와 출산 가정들은 세금이 증가한 것은 맞지 않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안종범 수석의 거짓말론까지 등장했다.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정산에서는 첫 자녀를 낳은 가정의 세금을 평균 71만원가량 깎아줬으나 올해는 혜택이 15만원으로 확 줄었다.
여당은 월급쟁이 증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딴 소리만 한다는 비판론이 자심하다.
새누리당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 대통령의 원칙론에 갇혀 여야 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야당은 직장인 증세를 찬성해놓고 이제와 책임이 없는 양 발을 빼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야당의 반대에도 밀어붙인 여당의 책임이 더 크다.
지난해 1월 1일 새벽 예산부수법안을 통과시킬 때 찬성한 국회의원이 245명인 반면 반대는 고작 6명이었다.
‘사실 증세는 없다’던 정부가 연말정산 파동을 자초한 셈이다.
정부 여당이 지난달 담뱃값을 올려 애연가들을 경악시키는 와중에 터진 연말정산 폭탄은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지 않은 정국의 최대 현안이 됐다.
국회에 계류 중인 자동차세와 주민세 인상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
13월의 세금 폭탄론은 직장인들의 분노와 불만을 넘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설 민심까지 뒤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올 설 차례상과 밥상의 최대 이야깃거리가 연말정산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최경환 부총리의 해명과 설득에도 성난 민심은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며 “오히려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모 씨(43)는 “직장인들에게 13월의 보너스는 설 세뱃돈 구실을 해왔다”며 “그 돈으로 아들딸과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줘 왔는데 이번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모 씨(44)도 “이제 갓 입사한 직원들과 대리급 직원들을 제외한 모든 임직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며 세뱃돈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직장인들이 모이는 회식과 술자리의 최고 화제(話題)는 연말정산 폭탄이다.
직장인들에게 13월의 월급은 가정의 암묵적인 묵인 하에 쓸 수 있는 개인 용돈 구실을 해온 게 사실이다.
또한 연말정산 환급금은 공돈이라는 인식을 들게 한 보너스 성격까지 띠고 있어 예년처럼 이 돈을 기대했던 직장인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에서도 납세거부 운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발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