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푹 빠진 초딩들…"시간 가는 줄 몰라요"

[신년 바둑기획③] '바둑 영재' 희철이의 겨울방학 일기

한국 바둑계가 드라마 '미생' 등의 영향으로 새해를 맞아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여자바둑리그가 새롭게 출범했고 전국소년체전에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CBS 노컷뉴스는 새해를 맞는 한국 바둑계의 표정을 모두 4차례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미생은 재밌지만, 장그래로 살긴 싫어요!"
② '꽃보다 바둑'…여성 프로기사들의 24시
③ 바둑에 푹 빠진 초딩들…"시간 가는 줄 몰라요"
④ "아생연후살타! 허정무 인터뷰가 인상 깊죠"

겨울방학을 맞아 바둑에 몰두하고 있는 초등학생들. 윤성호기자
◈ "드라마 '미생' 영향…초등생 바둑 수강생 20% 늘어"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부천 상동의 한 어린이 바둑교실. 초등학생 20여 명이 모여 바둑 삼매경에 빠져있다. 흑돌을 20개 이상 깔고 접바둑을 두는 '왕초보'들도 보인다.

비록 고사리손으로 바둑돌을 놓지만, 표정은 제법 심각하고 대국에 임하는 자세도 의젓하다.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이곳에서 13년간 바둑을 지도하고 있는 정민효(44·동그라미 바둑교실) 원장은 "최근 드라마 미생 등의 영향으로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초등학생 수강생들이 지난해 겨울방학보다 15~2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특히 "어린이들이 바둑을 두면 무엇보다 사고력과 인내심이 향상되고 게임 중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권준수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3년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장기간의 바둑 훈련이 두뇌기능을 발달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내 연구결과가 '프런티어스 인 휴먼 뉴로사이언스(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에 실리기도 했다.

'방과후학교'나 '어린이 바둑교실' 수준에 더는 만족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전문적인 바둑 도장을 찾기도 한다.

서울 충암바둑도장에서 바둑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유희철(9) 아마 3단. 윤성호기자
◈ 하루 종일 바둑에 푹 빠진 '바둑 영재'…"너무 재밌어요"

서울 충암바둑도장에서 만난 유희철(9·홍은초2) 군도 바로 그런 경우다. 유 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지난 2013년 5월 '방과후학교'에서 처음 바둑을 접했다.

하지만 바둑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자 강사의 권유로 동네 바둑교실로 옮겼다가 지난해 2월부터는 충암바둑도장에서 본격적인 바둑 수업을 받고 있다.

요즘은 겨울방학을 맞아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충암도장에서 하루 11시간가량을 보낸다.

유 군은 "바둑이 무척 재밌어 시간이 빨리 간다"라면서 "너무 성급하게 공격하면 잡히는 수가 있어 참을성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1년 만에 아마 3단으로 실력이 수직 상승한 유 군은 '프로 입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 유승무(46·아마 8급) 씨는 "희철이가 바둑을 두면서 많이 차분해지고 부자간에 대화도 늘었다"면서도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아직은 학교생활도 잘하고 나이도 어려서 큰 걱정은 없어요. 하지만 좀 더 자라면 진학문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겠죠. 또 프로 입단에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도 걱정입니다."

이창호 국수 역시 과거 충암고 야구부에 등록한 비화가 있다. 당시 충암고에는 바둑부가 없어 편법으로 야구부에 등록시켜 바둑 공부에 매진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많은 초등학생들이 서울 충암바둑도장에서 바둑공부를 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 바둑, 소년체전 정식종목 채택…꿈나무들에게 '희소식'

하지만 앞으로는 '바둑 꿈나무'들이 좀 더 좋은 여건에서 바둑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바둑이 전국소년체육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바둑은 지난해와 올해 전국체육대회 시범종목을 거쳐 내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27일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최종 매듭지을 예정이다.

대한바둑협회는 앞으로 초중고교와 대학, 일반부팀을 17개 시·도에 1팀 이상 결성해 나갈 계획이다.

대한바둑협회 심우상 부장은 "바둑이 스포츠로 인정돼 체육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바둑 꿈나무들이 특기생으로 진학할 길 등이 열려 바둑 공부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 부장은 또 "바둑이 학교 체육과 접목돼 바둑팀 감독과 코치에 대한 수요도 늘어 프로 기사들의 활동 영역도 대폭 넓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2년부터 한국 바둑을 넘어서고 있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바둑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상당수 초등학교가 바둑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고 프로에 입단할 경우 명문대 입학과 기업체 입사 시험에 각종 혜택도 부여한다.

지난해 6월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만찬 석상에서 창하오 9단을 직접 소개하면서 "요즘 중국 바둑이 성적이 좋다"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 바둑이 다시 만리장성을 넘기 위해서는 '바둑 꿈나무'들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서기 위해 먼저 유소년 축구클럽부터 키워 그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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