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모습 속에는 '대박난' 배우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휴식 시간까지 연기에 골몰한다. 모두가 힘든 현장 속, 자신보다는 스태프들의 고생을 돌아보길 바란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대명은 그렇게 취재진을 만났다.
다음은 김대명과의 1문 1답.
-'미생'이 종영했다. 지금 어떤 심경인가
"오랜 시간을 연기해 허한 마음이 크다. 아직 크게 실감은 나지 않는다. 촬영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비지상파 드라마로는 드물게 '미생'은 시청률 8%를 넘겼다. 처음부터 '미생'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나
"내가 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을 뿐,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많이들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 것 같았다. 신나서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들 혈안이 돼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항상 치열했다. 스태프들도 그렇고 드라마가 가진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치열했나
"스태프들이 정말 전부 많이 고생하셨다. 보통 A팀과 B팀으로 나누는데 한 팀이 분량을 다 촬영해야 되는 입장이니까, 고생을 많이 했다. 배우들도 정말 고생했지만 스태프들이 진짜 많이 고생했다. 스태프들 공이 크다. 이 이야기는 꼭 (기사에) 넣어 줬으면 한다"
-PD님이 첫 촬영 때많이 긴장했다고 하더라. 어땠나
"공간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 많이 긴장하긴 했다. 금방 익숙해지더라"
-김동식 대리 역할 오디션 보면서 느낌이 왔나
"될 것 같은 느낌 있으면 대부분 떨어지지않나? (웃음) 그런 느낌보다도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 역할을 하고 싶었다. 위치 중심을 잡고 있는 김 대리의 모습이 힘들어보이기도 하고,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친구들도 만나고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대우 인터내셔널' 관계자나 직장인들 이야기 많이 듣고 그랬다.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려고 했다. 직장인 역할이 주변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습이라 오히려 쉽지 않았다. 잘못하면 거짓말로 보이는 것이 다 티가 나니까"
-직장인에 대한 인식도 조금 달라졌을 것 같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저렇게까지 빡세게 사는 구나. 슈퍼맨이구나. 이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장그래 같은 부하직원이 들어오면 어떨 것 같나
"처음엔 되게 당황스러울 것이다. 굉장히 일이 많은 순간이고, 빨리 해결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인데 회사 경험도 없고 자격증도 없다. 그러면 그렇게 반기지 못할 것 같다. 그게 더 솔직하지 않나?"
-선배 배우들과 후배 배우들 사이에서 중간자적 역할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연기하니까 되게 좋았다.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님이 잘 보듬고, 장그래(임시완 분)도 도움을 많이 주고. 연기적으로 두 분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선배로서 후배들의 연기를 볼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하다
"대단하다. 입바른 소리가 아니고 (내가) 그 나이 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정말 훌륭한 배우들이었다. 오 차장님이 제일 많이 도와주셨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만들어나갔다. 치열하게 연기한 기억이 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
"시작부터 모든 과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난다. 아직도 통째로 기억이 있다"
-김동식 대리와 배우 김대명은 실제로도 비슷한가
"비슷한 점이 있다. 김동식이 가진 유머러스한 부분과 인간 관계,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은 비슷하다"
-김동식 대리 외에 '미생'에서 욕심나는 역할은 없었나
"전 김동식 대리만 제일 하고 싶었다.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 것도 못하고 있는데 다른 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 수가 없었다"
-'미생' 전후로 변화가 있다면?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진짜 없다. 살던대로 산다. 저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살던대로 사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거리 다니다보면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다. 서로 민망하다. 사인 요청을 해주시면 사인 해드린다. 저도 그런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새로운 대사를 많이 하긴 하는데 현장에서 많이 하는 경우는 없다. 대본을 받으면 대본에 필요한 대사를 적어 넣고 리허설을 해서 허락받고 한다"
-'미생' 연기가 많이 호평 받았는데 본인 스스로 연기에 평을 내리자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후회는 없다. 어떻게 다 만족하겠냐. 좀 아쉽긴 하다. 지금하면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배우로서 본 '미생'의 공감 포인트를 알려달라
"다들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지 않을까. 내 이야기 같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것에 대해 많이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 시즌2가 제작된다면 또 참여할 생각이 있나
"시켜준다고만 하면 흔쾌히 감사하게 연기하겠다"
-'미생'은 배우 김대명에게 어떤 의미인지?
"매 작품이 제게 주는 의미는 다 다르다. '미생'은 다들 그렇듯이 특별할 것이다. 연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행복한 추억이다"
-실제 성격은 좀 어떤가. 쉬는 날에는 노래도 듣고 그러나
"코미디나 유머러스한 것을 되게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그룹은 없고 옛날 노래 좋아한다. 들국화, 고(故) 김광석, 유재하 등 형님들 노래 좋아한다"
-필리핀 세부로 간 포상 휴가는 어땠나
"스태프들이 가서 사적인 이야기 나누고, 고생했던 이야기 하고 그런 것을 나누는 것이 좋았다. 100명 정도 갔다. 못 간 멤버들에게 연락은 안 했다. 일 때문에 못 갔는데 놀리는 것 밖에 안 되는 거 같아서"
-평소에도 '미생' 멤버들과 자주 모이나
"자주는 못 모이고 대리 애들은 몇 번 봤다. 회식할 시간이 별로 없다. 다 같이 모여서 쉬는 날이 별로 없으니까 못 모였다"
-차기작에서 하고 싶은 캐릭터는 없나
"그런 건 특별히 없다. 농담이 아니고, 무슨 캐릭터가 올지 모른다. 하고 싶은 역할들을 많이 하고 있다. 독특한 역할도 하고, 오는 역할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영화를 보고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였다. 한석규 씨 연기도 좋았고, 영화가 주는 이미지가 마음을 흔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배우 생활하면서 힘든 순간은 없었나
"항상 그렇다. 다음이 어떻게 될지 정해지지도 않고, 항상하는 고민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을 것 같이 힘든 적은 없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밥은 주고, 차비만 있으면 왔다갔다 하니까"
-연극 무대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다
"돌아간다는 얘기는 너무 건방진 것 같다. 어디 가지도 않았고 다른 선배님들도 많은데…. 작품을 하다보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딱히 나눠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휴식 기간이 좀 있나. 쉬면서는 어떻게 생활하나
"2월부터 촬영이라 바로 들어간다. 휴식기간에는 여행을 가면 좋을 것 같다. 혼자서도 많이 간다. 또 대본보면서 걸어다니고, 커피 마시고. 결국 다음 작품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실 마음 놓고 아무것도 없이 쉬지 못한다"
-연애나 결혼 계획은 없나
"때가 아닌 것 같다. (집안에서 결혼은) 전혀 재촉하지 않는다"
-몸매 관리는 별도로 하는 편인가
"지금은 드라마가 끝나서 4㎏ 정도 빠졌다. 일부러 다이어트 하는 것은 아니고, 다음 작품에 맞춘다. (몸무게 줄이고 늘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게 쉬우면 얼마나 좋겠냐.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작품에 맞출 수밖에 없다. 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할 때 본인만의 캐릭터 분석 노하우가 있나
"그건 뭐 영업비밀 알려달라는 거 아닌가?(웃음) 별거 없다. 대본을 많이 보는 것이다. 대본 안에 답이 있다"
-이 세상의 '미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의 말이 있을까
"저는 원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항상 달라진 것은 없다. 자기 위치에서 힘든 삶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나
"제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나쁘지 않다.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돈이 많고, 명예롭고 이런 문제가 아니다. 제 행복의 기준과는 조금 다르다"
-오랜 연기 생활 동안 본인이 포기할 수 없는 욕심이 있다면?
"한 작품이라도 잘해야겠다는 욕심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욕심은 없다. 그냥 저는 왜 잘해야 하는지 이유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다. 이 부분은 포기할 수 없다. 캐릭터에 따라 집중하는 편이다"
-연기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재밌는 것을 하고 싶을 것 같다. 모르겠다. 저도 알고 싶다. 연기하다가 더 재밌고 행복한 일이 있다면, 이 일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싶으면 하지 않을까. 시는 쓰는 것만 좋아했다. 이상의 시를 좋아했었다"
-2014년은 배우 김대명에게 어떤 한 해라고 할 수 있을까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좋은 스태프들과 좋은 배우들을 만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인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행복했다"
-스스로 '완생'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저는 미생일 것이다. 완생이라고 하는 순간이 있을까. 그냥 주어진 일을 하나씩 잘 해나가는 것이 완생으로 가는 비슷한 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