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
①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이갑규 ②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김영진 ③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④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
이 그림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코 파는 이야기다. 책 속 등장인물은 몰래, 보란 듯이, 때론 어쩔 수 없이 코를 판다. 몰래 코 파다가 들켜서 창피할 때도 있고, 너무 심하게 파서 아플 때도 있지만 뜻밖의 '월척'(?)을 건졌을 때의 짜릿함은 표현 불가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코 파기에 대한 은밀한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점이 아닐까.
15년간 전집과 그림책에 그림을 그려온 이 작가는 "어떻게 하다 보니 코딱지를 첫 창작 그림책의 소재로 삼게 됐다"면서 "휴지를 돌돌 말아 코를 간지럽히는 장난을 자주 쳤던 어린 시절과 아내에게 '그거 어디에 버릴 건데?'라는 잔소리를 듣는 지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것 같다"고 웃었다.
이 작가는 "꼭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져줘야만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억지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보다는 내용 중 자연스럽게 녹여서 독자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재해석할 여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봄,여름,가을에는 나무로 우거진 산이지만, 낙엽 떨어진 겨울에는 쓸쓸한 산동네가 되는 김포 감정동의 작업실에서 이 작가를 만나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고민스러웠던 점은?
▲ 완성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출판사(책읽는곰)와 계약하고 단행본으로 출간하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어요. 실제 작업한 기간(스케치+채색)은 2~3달 정도 되고요. 제가 생계형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보니 창작만 하는 게 아니라 전집이나 그림책에 그림 그리는 일을 주로 하면서 짬짬이 진행하는 거죠. 출판사에 초안을 보내도 바로 피드백이 오는 게 아니라 검토하는데 길게는 한 달 정도 걸리고요. 다른 작업 하면서도 미완성인 초안을 계속 머릿속에 띄어놓고 있어요. 그래야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이거다'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적용할 수 있거든요. 그때 쾌감은 말도 못하죠. 언제 어디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림책 한 권 펴내는데 1~2년은 쉽게 가요.
▲장면 하나하나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본 작업보다 처음 콘셉트의 방향을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림 그리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척척 그려낼 것 같지만, 딱 맞는 이미지를 찾아내려면 드로잉 작업을 반복해야 해요. 일단 콘셉트를 정한 후에는 1~2시간 만에 한 컷을 완성하기도 했고, 하루에 세 컷까지 그렸어요. 채색은 판화, 아크릴, 유화로도 해보다가 최종적으로 수채화에 연필을 조금 섞었죠. 마감시간이 정해진 전집과 달리 창작은 변수가 많아서 작업기간을 특정하기 어려워요. 어떤 면에서는 마감이 있는 게 편할 수 있지만 창작작업이 훨씬 재밌어요. 늦바람이 무섭다고, 예전에는 일하기 싫어서 잤는데 요즘은 잠들면 구상을 못할까봐 깜짝 놀라서 깨요. 하하
▲책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은?
▲출판사와 협업 시 에피소드는?
출판사와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초안의 완성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느낌을 받았을 때 재미를 느꼈죠. 출판사가 수정,보완할 부분을 얘기해주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계속 고민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이 훨씬 탄탄해졌어요. 그래서 최대한 완성된 원고를 보여주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완전 초안을 보낸 다음 이런저런 피드백을 많이 받으려 해요. 창작 그림책 작가로는 신인이니까 다양한 출판사와 작업할 생각이에요.
▲책에 대한 주변 반응은?
4~9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책인데, 아이와 어른 모두 재밌어했어요. 교육적인 내용이 아니다 보니 반응에 비해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요. 아내에게 물었어요. '교육적인 그림책과 원초적인 소재를 다룬 그림책 중 하나를 고른다면?' 그랬더니 전자를 고르더라고요. 음, 좋은 그림책은 계속 꺼내보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좋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요. '우리 아이가 이 책만 찾아요' 그런 얘기 들을 때 가장 뿌듯해요.
▲딸의 얘기를 많이 참고할 것 같은데
저도 그런 기대를 많이 했는데, 별로 얻은 건 없어요. 딸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 귀찮아하고, 자기 그리지 말라고 해요. 친구들이 '코 판다고 놀린다'고. 예전에도 오줌싸개로 그렸는데 '못 생기게 그렸다'고 싫어하더라고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질문했을 때 대답이 서사적인 면에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아이의 존재가 동기부여가 되는 관찰대상은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데, 점점 크니까 동화 쪽으로 옮겨야 하나 걱정이에요. 하하
▲글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어떻게 작업하나?
▲다른 작가의 그림책도 많이 읽나?
자꾸 보다 보면 일정한 틀에 갇히는 느낌이라 요즘에는 잘 안 봐요. 오히려 소설이나 영화를 많이 보죠. 영화는 하루에 한 편은 보려 하는데, '봐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 책처럼 가볍고 경쾌한 일본소설 위주로 읽어요. 얼마 전에도 한 소설에 나온 그림자 이야기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서 짜릿함을 느꼈죠. 소설을 읽다보면 낚시하듯 좋은 생각이 딱 걸려들 때가 있어요. 그 재미에 책을 자꾸 읽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먹이사슬, 이웃, 달리기, 자화상 등을 소재로 한 창작 그림책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욕심 같아선 올해 최소 한 권은 완성하고 싶은데 정확히 언제 출간할지는 저도 정확히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