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기준금리 인하설 '솔솔'…득실은?

양날의 칼, 잘 못 쓰면 독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연초부터 기준금리 인하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좀처럼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연초마다 ‘상저하고’의 경제 전망과 함께 경기부양책을 반복해 왔지만 경기는 여전히 뚜렷한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올해도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항상 그렇듯 기준금리 인하는 재정의 조기집행과 함께 경기부양을 위해 가장 손쉽게 꺼낼 수 있는 카드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노무라 등 일부 해외 투자은행들도 한은이 1월 중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신년사에서 올해 통화정책과 관련, “완화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하면서 일부에선 이를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신호로 해석하며 1월 금리인하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물론 이 총재의 발언을 금리 인하 시그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고,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런 취지로 발언을 했을 리도 없다. 경기 회복이 절실한 시점에서 시장 주체들에게 현재의 완화기조를 상당기간 이어가겠다는, 적어도 단기간에 통화정책을 변경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신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모든 경제정책이 그렇듯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양날의 칼’과 같다는 점이다.


◈ 경기부양 효과

금리 인하의 대표적인 효과는 기업과 가계의 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싼 금리로 자금조달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투자와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무덤덤한 반응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에서 이런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은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금리를 낮춰도 투자는 꺼린다. 돈도 많고 금리도 높지 않은데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고, 따라서 금리 인하가 투자를 유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또 광의통화(M2) 등 한국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유동성은 풍부한데 돈이 돌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올들어 1일에도 통안채를 발행해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상황이다. 돈은 많이 풀렸는데 투자나 소비로 흘러가지 않아 문제가 된다면 유동성을 늘리는 정책보단 투자 촉진을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이란 이야기다.

가계의 경우도 금리인하가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는 있지만 가계부채를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도 수반한다. 1천조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이미 우리 경제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두 차례의 기준금리인하 이후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과 맞물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리인하는 가계 소득을 오히려 감소시켜 우리 경제의 주요 현안인 내수 촉진에도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금리를 연 0.25% 인하했을 때 가계의 금리부담은 2조8천억원 감소하는 반면 금융소득은 4조4천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양날의 칼

일본은 90년대 이후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다. 급기야 1999년에는 기준금리가 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유동성 완화 정책이 투자나 소비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당시 은행 자산은 3배 증가했지만 대출은 오히려 15% 감소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경기는 살아나지 않은 채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로, 중앙은행은 제로 금리로 거시 정책의 두 축이 정책수단을 상실하면서 이른바 ‘유동성함정’에 걸려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3%로 2년 연속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11월 상승률은 9개월만에 1%로 떨어졌고, 12월은 0.8% 오르는데 그쳐 14개월만에 가장 낮았다.

낮은 물가상승률은 유가와 농산물 가격 하락의 영향도 컸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비부진이 원인이다. 지난해 경기부양을 위해 한은이 0.25%씩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정부는 41조원의 대출 자금을 공급했지만 소비나 투자로 연결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지난해 7월 잠시 급등했던 기업의 설비투자지수가 이후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사실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금리인하의 실물경제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측면에서 금리 인하 카드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우리나라가 ‘유동성 함정’의 상황은 아니라는데 한은이나 해외투자자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경기진작을 목적으로 금리인하와 재정 정책을 무리하게 운용하다 보면 결국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 달러화 강세

금리인하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3분기 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에 이어 올해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올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고, 우리도 그 영향권의 한가운데에 있다.

금리가 오르면 수익률이 오르게 되고, 이는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신흥국에 몰렸던 유동성이 미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신흥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터기 등 주요 신흥국에서 지난해 말부터 이미 통화가치가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있고, 지난해 말 주식과 채권 등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외국인들은 2조2천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 팔았고, 채권 시장에서도 넉 달만에 3천200억원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우리나라에도 금리인상의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도 있다. 원화가 결제통화가 아닌 이상 이런 상황에서 통화당국이 금리를 내리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편, 엔저에 대응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금리인하가 검토될 수도 있겠지만 달러화 강세에 따른 변화가 훨씬 파괴력이 크다는데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현재의 낮은 물가상승률도 금리 인하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총재가 신년사에서 밝힌 것처럼 낮은 물가 상승률은 유가와 농산물 가격하락 등 공급자 요인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물가목표 달성의 측면만 고려해 금리를 운영할 수는 없는 문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거시 경제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려면 정책의 여력을 아껴둘 필요가 있다. 금리인하 카드를 다 써버린다면 정책 기능 상실에 따른 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커지고, 이는 경제 전반에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금리의 추가 인하를 요구하는 유혹과 압박을 받겠지만 기준금리가 이미 상당히 낮아진 상황에서 통화당국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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