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통역은 외교의 재앙

[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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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에콰도르 과야킬에서는 두 남자가 남미대륙의 운명을 두고 설전을 펼치고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에 반기를 들고 군대를 모은 시몬 볼리바르와 아르헨티나에서 반란군을 이끌고 온 산 마르틴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다음날 의견을 정리한 뒤 페루에 있는 스페인 부왕청은 볼리바르가 처리하기로 합의를 본다.

산 마르틴은 그 뒤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뒤 조국이 독립한 직후 프랑스 파리로 떠나 평생을 살았다.

왜 같은 독립지도자였는데 볼리바르는 지금도 남미대륙의 영웅, 마르틴은 잊혀진 망명객을 자처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이유는 바로 두 사람이 모두 스페인어를 구사해 통역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통역은 이처럼 국가지도자의 입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이자 온갖 비밀을 다 간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말을 잘 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밀을 지킬 때는 입에 자물쇠통을 차야 할 때도 있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원주민여성 말린체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낮에는 통역, 밤에는 애인으로 잠자리를 함께 하며 "내 혀(Mi lengua)"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통역이 실수를 해 외교망신을 자주 당한다고 한다. 특히, 미 국무부의 한국어통역은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로 통역은 무조건 미국 시민권자여야 하고 두 번째로 이 시민권자를 가르칠 통역교육기관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어려서 미국에 오거나 미국에서 한국인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북한이 핵무기보유를 시인했다(North Korea admitted having nuclear weapon)"와 "북한이 미국측이 주장한 핵무기 보유설을 수긍했다(North Korea acknowledged US insistence that North Korea have nuclear weapon)"를 구별할 수 없다.

첫 번째 문장은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보유를 인정한 것이고 두 번째 표현은 미국측이 핵 보유증거로 이것저것 증거를 보여주자 이를 부정하지 않은 것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이들 재미교포 통역관들의 또 다른 약점은 동음이의어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This school can admit 200 students(이 학교 입학정원은 200명이다)"를 ''이 학교는 200명의 학생만 인정한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런 통역이 실수를 할 때면 한반도에 핵이 터질 것인지, 터진 것인지 긴장을 하게 되니 통역의 힘도 이만저만 센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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