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과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엄상필 영장전담부장판사는 31일 조 전 비서관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범죄혐의사실의 내용,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해 볼 때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각의 이유였다.
검찰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정윤회 문건을 포함한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는 17건의 청와대 문건을 박관천 경정을 통해 박지만 EG 회장에게 건네면서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 전 비서관 측은 박 회장에게 6건의 문건을 건넨 적은 있지만 대통령 기록물 성격의 문건이 전혀 아니었으며,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나머지 11건의 문건은 박 경정에게 건네라고 지시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맞섰다.
조 전 비서관은 박 회장에게 건넨 6건의 문건도 공직기강비서관실 고유의 업무인 '대통령친인척관리'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에게 목적을 갖고 환심을 사려는 인물들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차원에서 몇몇 인물들의 과거행적을 정리한 문건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조 전 비서관 측도 인정하고 있는 문건 6건의 성격을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있는지, 또 조 전 비서관은 부인하고 있지만 나머지 청와대 공식문서 11건을 박지만 회장에게 건넸다는 박관천 경정의 진술에 신빙성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영장실질심사의 쟁점이었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사실상 조 전 비서관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 가이드라인 수사 비판 재점화
검찰의 가이드라인 수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미 일찍부터 제기됐다.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회장에게 문건을 건넸다는 유일한 증거는 구속된 박관천 경정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박 경정은 청와대 문건유출 혐의 외에도 형량이 중한 뇌물수수 혐의도 적용받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 전 비서관 측에서는 검찰이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 전 비서관 구속을 목적으로 박 경정의 진술을 유도해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조 전 비서관도 박지만 회장에게 건넨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문건 6건의 성격을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할 수 있다면 검찰의 논리에 힘이 실리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설사 조 전 비서관이 건넨 문건이 대통령기록물로 인정받는다 해도 건넨 목적이 정당한 공직기강비서관실 업무의 일환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위법성 조각'에 의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검찰이 조 전 비서관에게 영장을 청구하게되기까지 과정도 석연치 않다.
지난 1일 검찰이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청와대 명예훼손 사건 수사에 착수한 이후로도 한동안 검찰의 사법처리 대상에 조 전 비서관의 이름은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정윤회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이 구속된 지난 20일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윤회씨가 사람을 시켜 박지만 EG회장을 미행토록 시켰다는 '박지만 미행 문건'이 박 경정의 조작에 의해 작성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 경정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배후설'이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
곧바로 박지만 회장을 비밀리에 재소환한 데 이어 조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 일에 불과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된 최모 경위의 자살로 홍역을 치른 검찰이 다시 무리한 영장청구를 강행한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요 문건의 외부유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청와대의 직무유기 의혹 등 충분히 사법처리 대상이 될만한 청와대 의혹들에 대해서는 손도 안 되고 있는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