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진당 강제 해산은 반대한다. 그렇다고 통진당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재야 원로 인사)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의 제도 정치권 유입을 지지했던 진보정치인들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비판하지만, 결정의 '피해자' 격인 통진당에 대해서도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반 유권자들의 반응은 아예 헌재 편이다.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 이상이 헌재 결정에 찬성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통진당은 정권의 '종북 몰이'로 억울하게 매도당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이정희 전 대표는 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구집권세력이 바로 야권의 단합을 깨기 위해서 종북공세를 들고 나왔다. 이 때문에 진보민주세력이 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과거 당에 몸을 담았던 '애증' 관계의 당원들은 단지 정권의 탄압으로 현재의 몰락이 초래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헌재 결정은 반대하지만…당내 패권주의·현실정치 외면 탓도 커
당내 패권주의와 이로 인한 경선비리·폭력사태, 현실 정치와의 괴리, 이석기 내란음모 논란 등이 '어제의 동지들'까지도 등을 돌리게 했다.
지난해 탈당한 최규엽 전 민노당 최고위원은 진보당의 폭력사태와 경선 비리 등에 대해 "패권적인 계파정치가 근본 원인이다. 당이 출세주의에 빠지면서 폭력사태와 분열이 일어나고 대중과 민생정치에서 멀어졌다"고 평가했다.
당내 정치투쟁에 몰두하면서, 정치의 근본인 민생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때 민노당에 몸담았던 박용진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변인은 "진보정치는 '먹고 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며 "국민들한테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진보로 거듭나야 하는데 마땅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무책임과 무능력의 통진당으로 비쳐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대착오적인 대북관은 통합진보당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원인이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했다. 학계 관계자들이나 진보인사들은 통진당이 보여준 북한에 대한 이중 잣대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야·시민사회 원로인 김상근 목사는 "통진당 자체가 친북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북한에 대해 긍정할 건 긍정하고 하지만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며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맹목적 '친북'이라고 비쳐지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정치학과 손호철 교수는 "반미를 내세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등의 이중적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때 늦은 성찰에 스스로 무너져
통진당이 위기에 두손두발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11월 '단결과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4가지 혁신안을 발표했다.
"지난날 통합과 분열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과 정치적으로 충분히 단결하지 못했던 점 등을 겸허하게 돌아본다", "우리 국민들과 정치적 괴리가 확대되고 민심을 잃었던 과정을 냉정하게 성찰한다. 민생을 가장 우선에 두고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아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반성문을 썼다.
통진당 관계자는 "분당이 되면서 역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후 당 내 연구소에서 정책들 준비하고 의원들도 공부를 해왔는데 그걸 펼칠 기회가 없었다. 내란음모 사태 등이 터지면서 정책 쪽에 역량을 더욱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내부 비판은 일부의 목소리였을까? 헌재 결정이 내려지자 통진이 보여준 모습은 성찰보다는 남탓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권 분위기도 주체사상을 믿는 통진당세력의 추락은 그 끝을 알기 어렵다는 비판적인 시각 일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