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출연자의 인권 보호'와 '독립영화로서 정체성 찾기'로 정리되는 이들 고민은 모두 예상 못한 흥행세가 부른, 피하기 힘든 반작용의 결과물이다.
18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CGV 압구정점에서 열린 특별 기자간담회에는 두 고민에 현명하게 대처하려는 제작진의 의지가 짙게 배 있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님아의 연출자 진모영 감독과 한경수 제작 프로듀서는 정면돌파를 선택한 모습이었다.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셔야 할 할머니께 폐를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양한 독립영화와 함께 사는 길을 가겠다"는 답변을 통해 취재진과 관객들에게 공감과 동참을 호소한 까닭이다.
간담회 내내, 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을 때 지녔던 첫 마음가짐을 끝까지 꺾지 않겠다고 밝힌 제작진의 의지를 전한다.
▶ 흥행 돌풍 예상했나.
= 진모영 감독(이하 진): 올해로 18년째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독립 피디로 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성규 감독의 독립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이하 시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지난해 개봉한 시바의 관객수는 5,000명이었다. 님아의 흥행은 예상할 수 없었다. 동료들이 만든 독립영화의 (적은) 관객수를 봐 왔기 때문이다. 님아의 누적관객수와 이 영화가 부른 현상에 우리는 정말 놀라고 있다.
▶ 최근 호소문을 통해 영화에 출연하신 할머니에 대한 관심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 진: 영화를 찍으면서는 미처 하지 못한 걱정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개봉이 가까워지면서 출연자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들더라.
현재 할머니께 직접적인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호소문은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시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가족들과 의논해 미리 막자는 취지였다.
관객분들이 호의를 갖고 동참해 주신다면 우리에게도, 다큐멘터리 장르에도 출연자에 대한 좋은 산례를 남길 수 있겠다 싶었다. 현재 할머니께서는 건강하게 지내시고, 영화가 잘 돼 기쁘게 생각하신다.
다만 우리가 촬영할 때도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찾아오는 분들이 계셨는데, 할머니께서는 반갑기도 하지만 두렵다고도 하시더라. 할머니께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내시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요청을 드린 것이다.
= 한경수 프로듀서(이하 한): 감독님이 2년 반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연락을 드리고 처음 찾아뵀는데, 그 자리에 큰 따님이 와 계셨다. 가까운 데 사시는 분도 아닌데 일종의 면접을 위해 먼 길을 오신 것이다.
결국 장기간의 면접을 거친 끝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허락해 주시고, 자녀분들도 부모님 입장을 존중해서 동의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할머니께서는 외딴 집에 혼자 계시는데다, 아직 할아버지 상중이셔서 많이 힘들어하신다.
호소문을 내고 보니 심기가 불편하신 분들도 계셨을 듯싶다. 이 자리를 빌어 정중히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 호소문에서는 수익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자제해 달라고 했다.
= 진: 우리 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혼자 계신 할머니께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셨으면 하는 부분이다.
수익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특정 인물의 삶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출연자에 대한 특별한 부분이 있다. 여러 전례도 있고, 수익을 숨기는 측면보다는 영화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 때문에 할머니께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호소문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다.
우리 영화 탓에 할머니 여생이 불행해진다면 그것 만큼 괴로운 일이 없을 것이다.
= 한: 촬영을 시작할 때 제작비가 한 푼도 없었다. 감독님이 쌈짓돈을 털어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7, 8개월 뒤 예고편을 만들었고 그걸 들고 뛰어다닌 끝에 순제작비 1억 2,000만 원을 확보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처음 영화를 만들 때는 투자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았으면 하는 정도였다.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는 안 돼"라는 소리 안 듣는 게 목표였다. 그래야만 독립영화가 재생산될 수 있으니 말이다.
과분한 사랑 덕에 지금 그러한 말은 듣지 않게 됐다. 투자자와 배급사 몫을 제외하면 나중에 어느 정도의 수익이 생길지 잘 모르겠다. 수익을 어떻게 활용하겠다고 확실히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 게, 출연자에게 알마 만큼 돌아간다는 얘기가 회자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전례를 봤을 때 우려스러운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로지 혼자 계신 할머니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 그럴수록 더욱 조심스러워진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에 당신들의 삶을 열어 주신, 큰 사랑과 선물을 주신 분을 지켜드리지 못한다면 우리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 진: 우리 영화는 다른 독립영화계의 동료, 선후배들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개봉을 했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사상 최대 개봉관 확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나.
우리에게는 큰 축복이었고 '최단' '최고' 등 '최'자가 들어간 것을 이뤄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국의 독립영화, 다큐멘터리에 대해 '돈도 안되고, 관객도 많이 안 든다'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신다. 그것을 깨고 싶었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영광일 것이라 생각했다.
상영관 축소를 요청한 것은 다양한 독립영화가 나올 수 있는 건강한 지표로서 우리가 길을 넓히고 다른 동료들이 그 부분들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 관객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 한: 사실 초반에 많은 관객들이 찾아 주시고, 언론의 호평도 이어져서 얼떨떨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님아의 예매율을 보는데 특정 다양성 영화관의 예매율이 90%까지 치솟더라.
우리는 계속 다큐멘터리만 해 오던 사람들이고, 영화로 개봉한 것도 처음인데, 어느 순간 보니까 님아가 독립영화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극장 측도 같은 생각을 한 듯싶다. 그래서 힘들게 잘 만든 영화가 더 많이 상영될 수 있도록 극장 측에 상영관 축소를 요청했다. 그래야 우리도 다음 작품을 할 때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 다양한 독립영화가 왜 필요하다고 보는지.
= 진: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시바의 관객수는 5,000명이었다. 고 이성규 감독은 저에게 친형이자 스승이었다. 동고동락하면서 어렵게 만든 영화에 5,000명이 든 것이다.
이성규 감독의 직전 영화는 4,900명이 들었다. 그는 시바의 개봉을 일주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관객수 5,000명 한 번 넘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여러 동료, 지인들이 시바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으로 꽉찬 극장을 보여 줬다. 그의 유언이 "한국의 독립·예술 영화를 사랑해 달라"는 것이었다.
님아의 흥행을 예상했냐고 물어 보시는 분들에게는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대답 밖에는 드릴 수 없는 이유다.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를 '워낭소리'와 비교하시는데, 그것은 이상향 같은 것이다. 그 근처에라도 가본 작품이 전무했기에 '무리'라 여기는 것이다.
독립영화는 그 자체로 획일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소수자, 약자의 생각까지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다. 이러한 가치가 상업적 판단에 따라 영화관에 걸리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극장·배급·투자 모든 부문에서 독립영화의 가치를 제고해 주셨으면 좋겠다.
▶ 독립영화 발전을 위한 바람이 있다면.
= 진: 모든 독립영화가 님아처럼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성이 강한 님아와 달리, 사회·정치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립영화도 많이 있다.
모든 영화가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성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그러한 영화도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제작비가 책정되는 상업영화와 달리, 님아 같은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우 어떻게 완성품이 나올지 모르니 투자의 힘을 받기가 어렵다. 제작이 너무 어렵게 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독립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행정적·재정적 부분까지도 훨씬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한다. 님아라는 영화를 계기로 이러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마디.
= 진: 영화가 흥행하면서 '기분이 어떤지'를 많이들 물으신다. 뭐라 딱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정말로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제작진에게 보여 주셨던 것들을 관객들에게도 보여 드리는 게 최종 목표였으니까.
다만 지금 조심하고 있고 앞으로도 늘 조심하려는 것이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는 조금 다른 특징이 있다. 실제 사람을 다루는 만큼, 출연자들은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분들이다.
그러니 그분들이 스크린에서 보여 주신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고, 다른 관심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 한: 지난주 금요일(12일)이 음력으로 치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딱 1년이 된 날이다. 할머니와 가족들을 찾아뵙고 첫 제사에도 참석했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님아의 포스터와 DVD를 직접 태우셨다.
잠깐 할머니 댁에 가서 (지금은 따님 댁에서 지내신다) 아궁이 앞에 앉아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는데, 할머니도 따님도 할아버지 생각하면서 많이 우시더라. 할머니가 편안하게 잘 지내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