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참모진들에게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는 '금기어'에 가깝다. 민경욱 대변인도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각 등에 대한 질문에 "그런 움직임을 제가 알고 있지 못하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흉흉한 민심을 달래고 집권 3년차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연말연시 분위기 쇄신용 개각과 청와대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청와대 개편의 경우 단순한 분위기 쇄신용이 아니라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훨씬 이전에 알고도 대처를 제대로 못해 문제를 키운 데 대한 관련자 문책 성격도 가미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문서유출 파동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그 동안에는 청와대를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상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조응천 VS 3인방' 대립구도에서 결국 3인방의 손을 들어줘 '정윤회 씨 동향'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의 퇴출을 직접 지시했고, 박 경정의 상관이던 조 전 비서관도 청와대 행정관 비리 보도와 관련해 문서유출의 책임을 물어 청와대에서 내보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3인방의 '조응천 라인' 밀어내기에 김 실장이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76세의 고령인 김 실장의 비서실장 재임기간이 1년 4개월을 넘겼고, 가정적으로도 힘겨운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교체 필요성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도 교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여당내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박 대통령이 무서워 말을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이재만 비서관은 정윤회 씨와 적어도 한차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 10여년간 연락이 없었다는 국회 발언이 거짓임이 드러나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세 비서관의 잘잘못을 떠나 박 대통령이 이들을 곁에 둘 경우 두고 두고 논란과 시비가 일 것이 분명한 만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여당내에서 일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비서실장과 3인방, 총리 다 정리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다 정리해서 새출발해야 대통령에게 힘이 생긴다. 지금 너무 망가졌다"고 말했다.
김기춘 실장을 교체할 경우 청와대에 들어온 기간이 비교적 긴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문제점을 노정한 참모진이 함께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각에서는 세월호 책임을 지고 사의를 거두지 않고 있는데다 내년 원내대표 출마가 유력한 이주영 해수부 장관과 일부 경제부처 장관 등의 소폭의 내각교체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용인술의 특징은 '한번 믿고 쓴 사람은 웬만해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국면전환을 위해 인적쇄신 카드를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무수한 개각과 청와대 개편요구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무시하다 타이밍을 놓쳐 손해를 본 경우도 많았다.
특히 문고리 3인방의 경우 초선 의원 시절부터 함께 해 왔던 '심복'들이어서 내치기가 쉽지 않다. 지난 7일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도 "(세 사람은) 내 곁에 15년간 있었다. 물의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적이 없다"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상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이들이 청와대에서 빠질 경우 빈공간을 채울 대안도 마땅치 않다. 그렇지만 이들을 내보내지 않고 감쌀수록 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김기춘 실장과 일부 수석 비서관을 바꾸고 정홍원 총리를 포함해 소폭이나마 내각을 교체할 경우 또 한번 인사정국이 펼쳐질 수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인사수석실을 신설했다해도 취임 초기와 지난 5, 6월의 인사실패로 인한 악순환이 재연될 수도 있다.
앞서의 새누리당 중진의원은 한 여론조사 기관의 박 대통령 지지율을 언급하며 지난 2주간 10%p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늘 지지도가 빠지면 뒤늦게 움직이는 스타일"이라며 "지지도가 더 빠지면 움직이겠지만 주춤거리다 반등하면 가만히 있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