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② 새 도서정가제 시행
③ 표현·언론의 자유 - 홍성담 화백 ‘세월 오월’, 손문상 화백 '공주님, 개 풀었습니다'
④ 공연 중단사태 빚은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⑤ 세월호 참사, 애도하는 문화계
⑥ 본질은 잊고, 재미만? 아이스버킷 열풍
(계속)
미국 비영리기관인 ALS협회가 지난 7월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람이 캠페인에 동참할 세 명을 지목하면 대상자가 24시간 이내에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100달러는 기부하는 형식이다.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호킹 등 유명인사가 동참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최근 페이스북이 발표한 2014년 10대 이슈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연예인, 정치인, 운동선수 등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이나 인증샷을 SNS에 공개하면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졌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 건 긍정적인 부분이다. 배우 유아인은 지난 8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회 전반적으로 무관심했던 질병이나 소외된 이웃들이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불충분하나마 도움의 손길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은 SNS를 통해 해낼 수 있는 아주 진취적인 일들 중 하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재미와 의미를 결합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서 영감을 얻어 또 다른 기부 캠페인이 속속 생겨나며 세계적으로 나눔 문화가 확산되는 효과도 봤다.
코트디부아르의 유명 블로거 에디 브로가 시작한 '비눗물 샤워' 캠페인은 비눗물을 뒤집어쓰고 손 세정제 3병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개인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에볼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 어린이를 돕기 위해 마련된 '웨이크업콜' 캠페인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자신의 모습을 찍어 공개하고 다른 3명을 지명하는 것으로, 배우 휴 그랜트, 엠마 왓슨 등 스타들이 동참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는 한 사회적 기업이 쪽방촌 주민에게 쌀을 기부하기 위해 '라이스버킷 챌린지'를 고안하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쌀 30kg을 들어올리지 못하면 쪽방촌에 쌀 30kg을 기부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일부 연예인과 정치인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자기 홍보수단으로 삼고, 일반인 역시 루게릭병 보다는 캠페인에 참여한 유명인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임에 따라 캠페인의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세월호 참사 후 국상 수준의 한국에서는 때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기과시 수단으로 변질한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비판하며 일부 네티즌은 트위터에 '노아이스버킷챌린지'(NoIceBucket Challenge) 해시태그를 붙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강남세브란스병원 희귀난치성 신경근육계질환 진료센터 강성웅 소장이 지난 8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은 되새겨봄직 하다.
"루게릭병이 어떤 병인지, 환자와 가족의 고충이 무엇인지를 아는지 궁금하다. 환자들의 절실한 문제들과 뿌리 깊은 고충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채 머리로만 생각하는데 그친다면 환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반짝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려했던 루게릭병에 대한 '반짝 관심'은 현실이 됐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한창이던 작년 8월 "농구 발전에 힘이 된다"며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박승일 전 모비스 코치를 KBL 명예직원으로 위촉했다. 그러나 박 전 코치는 지난 7월 아무런 통보도 없이 급여가 끊기는 등 사실상 정리해고 당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자를 위한 정부의 예산 역시 계속 감소하고 있다. 내년 예산은 올해 297억 원보다 30억 원 적은 267억 원으로 책정됐다. 2013년에는 315억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