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오빠가 돌아왔다' '방황하는 칼날' '두근두근 내 인생' '아빠를 빌려 드립니다' 등이 그 면면이다. 한국 근대 단편소설 세 편을 애니메이션으로 엮은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도 빼놓을 수 없겠다.
소설 원작 영화들은 주로 동명의 한국 현대소설을 각색해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을 통해 소개된다. 내년 1월 28일에도 스타 작가 정유정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심장을 쏴라'가 개봉한다는 점이 그 근거다.
하지만 예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 소설이더라도 공간적·시간적 배경을 한국의 어느 시점으로 옮겨와 소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의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에 바탕을 뒀다. 31일 개봉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미국의 청소년 문학 작가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내년 1월 15일 선보일 '허삼관'도 중국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최근 캐스팅을 마친 '아가씨'의 경우,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소설 '핑거스미스'(지은이 세라 워터스)의 배경을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서 한국 일제시대로 옮겨 온 것이다.
이렇듯 한국영화는 국적을 불문하고 흥미로운 소설과의 은밀한 만남을 꿈꾸고 있다. 여기서 "왜?"라는 물음을 던져보는 것이 한국영화계의 흐름을 엿보는 데 있어서 색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수월함과 부담감 공존…"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
이 감독은 "안도감이 드는 한편 부담감도 크다"고 답했다. "작품의 청사진이 되는 원작이 있다는 점에 안도할 수 있지만, 소설에 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은 주제든, 이야기든, 캐릭터든 어떤 특별한 요인이 작용하는 듯싶다"며 "활자를 영상으로 옮겨야 하는 작업인 만큼 해당 소설이 지닌 그 특별한 요인을 부각시킴으로써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애쓴다"고 전했다.
완득이는 주제와 캐릭터, 우아한 거짓말은 주제가 부각된 영화라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소설 완득이의 배경은 흔히 말하는 달동네인데, 그곳 사람들을 묘사할 때 불쌍하다거나 '장애인은 이럴 것'이라는 편견에 기대지 않고 사실적이면서 개성 있는 캐릭터로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영화로 만들 때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느낌으로, 그곳 사람들이 지닌 보편적인 인간애를 부각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우아한 거짓말의 경우 "흥행을 떠나서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이 감독은 전했다.
그는 "기존 왕따를 다룬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 안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아한 거짓말은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긴 점이 인상 깊었다"며 "영화화 하면서 왕따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한 아이의 죽음에 얽혀 있는 가족과 친구를 따라가며 소통의 부재가 낳는 문제들을 짚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있다. 문어체로 쓰인 소설 속 대사는 우리 일상 언어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소설의 대사를 영화에 그대로 쓰기에는 어색한 면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문어체 대사는 반드시 구어체로 바꿔 준다.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심상 역시 영상으로 표현하기 까다로운 요소다. 심상은 독자 개개인의 경험이 반영되는 까닭에 사람마다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를 영상으로 옮길 때는, 관객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보편타당한 장치를 찾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요즘에 나오는 소설들은 머릿속에서 그 상황을 쉽게 그려볼 수 있는 영상적인 것들이 많은데,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도 그랬다"며 "주제를 파고들던 예전 소설과 달리 요즘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끌고자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하는 듯해 영화화하는 데 보다 적합하고 수월해진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어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 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해 왔다"며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는 겪어보지 못한 인물과 세상, 미처 알지 못했던 주제의식에 공감하면서 개인적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성장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 "목 축여 주는 귀한 샘물…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주 대표는 "소설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것은 몹시 어려운 작업인데, 차라리 아이템을 하나 잡아 시나리오로 쓰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영화도 원작 소설 버금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제작자로서 원작을 훼손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속상하지 않겠나. 내 심장을 쏴라 하면서 그 소리 안 듣기 위해 분투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내 심장을 쏴라의 시나리오 작업은 감독 출신 작가 5명과 전업 작가 3명, 그러니까 모두 8명의 작가가 붙어 6년 동안 이뤄졌다. 시나리오는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투자사의 거부로 여러 차례 고쳐졌고, 각색료만 2억 원이 들었다.
"내 심장을 쏴라는 청춘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주 대표의 말대로, 이 영화는 원작이 지닌 묵직함보다는 청춘의 생기발랄함을 표현하는 데 무게를 둔 모습이다.
주 대표는 "원작 소설의 맨 앞장에 '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말이다 싶어 영화의 맨 앞에 그대로 넣었다"며 "원작을 그대로 따라하기 보다는 이 시대 관객의 취향, 청춘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을 반영해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같은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영화적"이라고 그는 전했다. 그러면서도 "작가 특유의 수사법이 있다보니 막상 시나리오로 옮기려 하면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다.
그는 "내 심장을 쏴라 시나리오를 보고 정 작가가 박수도 쳐 줬지만, 방대한 이야기를 97분짜리 완성도 높은 그릇에 담아내는 일은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샘물에 빠져 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밀어올리는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제작자에게 소설 원작 영화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주 대표는 "이 이야기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인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인가를 먼저 보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소설 원작 영화를 만들 때 소설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한국영화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수많은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며 "기획, 투자, 캐스팅 과정에서 영화 내적인 측면과 시장성을 검토한 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한다면 실패 확률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작자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 방편의 하나로 소설, 요즘에는 웹툰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며 "제 경우 회사를 꾸려가는 입장에서 전작 '관상'(2013)을 비롯해 많은 아이템을 갖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 심장을 쏴라 한 작품만 팠다면 아마도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