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씨와 박 대통령 동생인 박 회장이 파워게임을 벌인다는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무성한 소문 중 하나였다가 이번에 문건 파문을 계기로 마침내 검증대에 오른 것이다.
문건 당사자들이 폭로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겪은 갈등의 세부적인 정황을 체크해 사실관계를 따진다면 암투설의 진위가 판명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테면 청와대 비서관들 중심의 '십상시' 회동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연결됐다는 얘기가 도는 '7인 모임'이 각각 정윤회씨와 박 회장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졌는지를 규명하면, 양자 갈등설의 진위가 어느정도 가려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윤회-박지만 악연…미행보도로 갈등 증폭 =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씨와 박 회장은 박 대통령 정치입문 전부터 불편한 사이였다고 한다.
박 회장이 지난 1990년 둘째 누나인 박근령씨와 공동명의로 작성한 탄원서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하는 탄원서에는 고(故) 최태민 목사가 육영재단을 전횡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따라서 박 회장은 최 목사 사위인 정씨에 대해 기본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고,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정씨가 비서실장 역할을 맡자 더욱 정씨를 경계했다는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 박 회장과 부인 서향희 변호사 등 친인척을 대상으로 엄격한 관리에 나섰다. 특히 서 변호사는 지난 대선 당시 '만사올통'(모든 일이 올케를 통하면 이뤄진다)이라는 야당의 표적공세에 시달리며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직을 그만뒀고, 대선캠프에선 박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서 변호사를 최근 만났는데 무척 힘이 없어 보였다"며 "변호사 사무실도 접었다"고 밝혔다.
올들어선 '박지만 사람'으로 불리던 공직자들이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여권 관계자는 "박지만인맥 좌천 논란은 박 회장이 자신을 견제하는 그룹이 있게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3월 '정씨가 사람을 시켜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시사저널 보도는 두 사람간 갈등을 증폭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당시 자신을 미행한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정씨가 시켰다"는 자술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정씨는 검찰 수사에서 "사실무근이다. 박 회장과의 대질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 회장의 오랜 친구인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대질신문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최근 박 회장은 '가만있는 사람을 왜 끌어들이나'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전했다. 정씨에 대해 박 회장이 불쾌해하고 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박지만·서향희 문건' 또 다른 불씨 = 박 회장 부부 동향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유출돼 박 회장에게 전달된 것도 두 사람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박 회장은 지난 5월 자신의 측근 전모씨와 함께 세계일보 기자를 만나 청와대 문건 100여건을 전달받았다. 세계일보는 이러한 내용을 최근 공개했고,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박 회장이 기자와 만나는 것을 도와줬다"고 밝혔다.
문건은 박 회장과 부인 서 변호사와 관련된 내용이며, 이권을 노리고 박 회장 부부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향 보고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 입장에선 누군가가 자신을 음해하려는 목적에서 의도적으로 문건을 유출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박 회장은 당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측에 유출경위 파악을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조사를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조 전 비서관은 오모 전 행정관을 통해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유출된 문건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정 비서관은 공식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오 전 행정관은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문건유출을 알렸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조 전 비서관 그룹이 박 회장 힘을 빌려 정씨와 핵심비서관 3인방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지난 4월 문건유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조 전 비서관이 5월 박 회장에게 접근해 청와대 문건 유출을 알렸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을 화나게 하려고 그런 문건을 전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7인 모임'을 문건유출 배후로 의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 회장과 세계일보 기자의 만남에는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 회장 측근인 전씨가 동석했고, 조 전 비서관 요청으로 유출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은 오 전 행정관이다. 세사람 모두 청와대가 지목한 7인 모임 소속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실체가 없는 모임이라 반박하고 있어 이 또한 검찰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이처럼 진실공방이 가열되자 청와대 일각에선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박 회장이 검찰에 나가 소명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 관계자는 "검찰이 판단해야 할 몫이지만 진실규명에 성역은 없다"고 밝혔고, 다른 관계자도 "박 회장과 관련된 부분은 본인 스스로 푸는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