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향토사학자 임명순씨가 최근 백석대 유관순 연구소에서 발표한 '유관순 열사가 해방 후에 발굴되는 배경'에 따르면 2014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8종 출판사 가운데 절반인 두산동아, 금성출판사, 천재교육, 미래엔은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록을 빠뜨렸다.
누락 이유로 지난 8월 26일 열린 교육부 주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친일 경력 논란이 이는 이화학당 교사와 교장이 해방 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어 기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에선 당연히 유관순을 모르고,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는 1950년대에야 들어갔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임 씨는 그러나 철수와 영희, 바둑이가 등장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어교과서를 제작한 박창해의 생전 회고록을 보면 교과서 제작과정에서 우리 여성 가운데 프랑스의 잔 다르크처럼 활동한 사람을 찾아내려 이화학당을 찾았으나 당시 교장 등으로부터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는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며칠 뒤 소식을 들은 유 열사의 조카 유제한이 찾아와 "집안에 3·1운동으로 옥살이한 이화학당 학생이 있다"고 전했으며 박창해와 함께 교과서 제작에 참여했던 소설가 전영택이 이야기를 만들어 교재에 올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으로 추정되며 실제 전영택은 1948년 유관순 전기 '순국처녀 유관순전'을 펴내 1950년대에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렸다는 연구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이 유 열사를 모른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북한의 고등중학교 제6학년 역사 교과서 리인형이 집필한 조선력사(교육도서출판사, 주체91)에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반일봉기에 앞장서서 싸우다가 일제경찰에게 체포된 16살의 녀학생인 류관순은 재판정에서도 재판의 부당성을 견결히 단죄하였으며 감옥안에서도 굴함없이 싸우다가 희생되었다'라는 문구를 들어 반박했다.
임명순씨는 "해방 후 유관순 열사가 발굴되는 과정에 대해 충분한 사료 조사 없이 하나의 방송 대담만을 믿고 친일 경력이 있는 신봉조와 박인덕이가 유관순 열사를 영웅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이를 받아들여 교과서에서 유 열사가 누락되는 사태가 빚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천안시민의 반발을 불러온 유 열사 교과서 누락사태는 교육부가 기록이 빠진 고등학교 교과서 4종에 2015학년도부터 유관순 열사의 역사적 발자취를 다시 싣기로 해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