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정부가 무섭다는 'D의 공포'…쓸 돈도 없는데 웬 물가걱정?
② 빚 위에 선 가계경제…"더 이상 줄일 데가 없다"
③ "정부 못 믿는다"…'각자도생' 나서는 사람들
"디플레이션 걱정이요? 어차피 지난 10년 동안 불황이라고 생각하고 허리띠 졸라매고 지내서 더 줄일 것도 없어요. 소비가 더 떨어질 게 있나?" (50대 주부)
정부와 언론은 이른바 'D의 공포'를 연일 강조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성장률이 3% 대 초반까지 내려갈 수 있다"며 디플레이션을 우려하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는 진단과 구조개혁 요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원과 주부 등 일반 가계경제 주체들은 디플레이션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실생활에서 디플레이션의 의미 그대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의 전조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일반 가계의 고정비라고 할 수 있는 식비 지출을 살피기 위해, 만원을 들고 서울 종로구의 한 마트를 찾아봤다. 부부가 쌀과 밑반찬을 준비했다는 가정 하에 한끼 식사가 가능한 품목을 살펴봤다. 일반 가정에서 가장 많이 먹는 육류인 삼겹살은 100g 당 2천3백원, 언감생심이었다.
'세일품목' 쪽으로 발길을 돌려 4천원에 고등어 한 마리를 샀다. 소량 포장된 파를 천원에, 작은 무를 천2백원에 구입하니 남은 돈은 3천8백원. 유통기간이 임박해 가격을 낮춘 포장두부 두모를 구입해 간신히 만원을 맞췄다. 마트에서 만난 40대 주부는 "세일하는 품목에 맞춰서 식단을 짠지 오래됐다. 그때 그때 먹고싶은 대로 장을 봤다가는 식비규모가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장바구니 물가를 포함해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올랐다. 전월세를 포함한 집세상승률은 더욱 가파르다. 지난달 전세는 지난해 같은달보다 3.0% 올랐고, 월세는 6.0%올랐다. 집값 인상폭 역시 올해들어 2.2~2.5%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
도시가스는 4.8%, 상수도료는 0.6%, 지역난방비는 0.1% 오르는 등 공공서비스 요금인상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하수도료(11.8%)와 시내버스요금(1.7%), 외래진료비(1.8%) 등 일반서비스 요금 인상도 가계의 부담이다. 정부의 저물가 경고에도 체감물가는 결코 낮지 않은 것이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산출한 것으로 근로자의 실질적 구매력을 나타낸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떨어지면 가계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임시직은 명목임금 마저 1년전보다 1.5% 줄어 실질임금이 무려 2.8% 줄었다.
'갚을 돈'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는데, 가계부채는 지난 10월 한달 동안에만 7조8천억원 증가했다. 증가폭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최대치로, 10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730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 등의 기타대출이 2조4천억원 증가해 지난해 6월 이후 1년 4개월래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못해 일각에서는 후퇴하고 있는데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품목은 가격이 오르는 상황, 여기에 주거부담 등으로 인한 대출까지 생각해야 하는 가계경제 입장. 디플레이션 우려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소비자가 구매력이 절벽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것은 물가 상승률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실질소득의 증가가 없기 때문"이라며 "전체는 물가는 미미하게 오르고 있지만 실제쓸 수 있는 돈은 그보다 덜 오르거나 하위계층 등 일부 계층의 경우 오히려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어 '물가가 오르지 않아서(디플레이션) 걱정'이라는 말보다 '지금 월급으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