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김기춘 비서실장은 왜 조응천을 버렸을까?

"'정윤회 문건'의 최초 제목은 '실장 사퇴설 관련 언론동향' 이었다"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문제가 되고 있는 '정윤회 문건'은 처음부터 정윤회씨를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고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설' 관련 동향을 조사하던 중 정윤회씨 관련 동향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런 동향조사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으며 김기춘 비서실장은 조응천 비서관으로부터 '구두보고'가 아니라 보고서를 직접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정윤회 문건'을 보고 받은 뒤 후속조사를 지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을 청와대에서 내보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왜 조응천 비서관을 버렸을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권영철의 와이뉴스 전체듣기]

▶ 먼저 문제가 되고 있는 '정윤회 문건'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에 의해 작성된게 맞나?

= 그렇다고 한다.

동아일보가 지난 8일 보도를 한 내용은 "정윤회 씨 동향 문건은 '비서실장 교체설'의 진원지를 파악하라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동아일보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기사를 쓴 기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실장으로부터) '사실이 아니고 누구에게도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사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비서실장 사퇴설을 지시한 사람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맞다는 취지의 진술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검찰조사에서 밝힌 내용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 중 누군가가 자신에게 지시를 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며, 민정수석이 지시했더라도 비서실장의 지시없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검찰진술이 사실이라면 '정윤회 문건'의 지시자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되는 것이고 보고서의 최종 보고대상도 대통령이 아닌 비서실장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정윤회 문건'의 최초 제목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설과 관련한 언론동향'이었지만 최종적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할 때는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으로 제목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 김기춘 비서실장은 조응천 비서관으로부터 '구두보고'를 받았다고 청와대가 해명했지만 보고서도 함께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응천 비서관은 당시 문건 3부를 출력해서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전달하면서 보고했다는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 그동안 청와대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검찰의 수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청와대의 해명과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건 사실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서면보고를 받고도 '구두보고'라고 해명한 점이나 자신의 사퇴설에 대해 파악해보라고 지시했다는 보도에 대해 왜 고소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이 홍경식 전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상대로 제대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 '정윤회 문건'을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서면으로 보고했다면 후속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 그 점이 이해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사실 문건의 내용으로 보면 당연히 후속조사가 이뤄져야한다. 그런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 참석자들이 그런 발언을 했는지 등을 조사하는게 정상적인 절차일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보고를 받은 뒤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알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새누리당 당직자들에게 "찌라시 수준의 정보라서 묵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응천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수고했다'면서 "자신은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찌라시 수준의 보고여서 묵살했다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말과는 배치되는 발언이다.

그리고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이 이 문건을 보고한 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방출됐다.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와 사정당국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 경정을 내보내라는 지시가 있었고 처음에는 경찰청의 핵심보직으로 내정됐다가 다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 가기로 했지만 결국에는 한직으로 분류되는 도봉서 정보과장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다고 한다.

조응천 비서관도 박 경정이 방출된 직후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일부 문건이 언론사에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격 경질됐다.

민정수석실 업무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보고하는 문건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보고되는데 후속으로 감찰조사가 아닌 오히려 문건보고자가 경질됐다는 건 문건에 거론된 당사자들이 문건의 내용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응천 비서관이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문건의 내용 또는 문건 자체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고 이 때문에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이 찍혀서 밀려나게 됐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에 대한 후속조사 대신에 조응천 비서관을 버렸다는 것이냐?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의 작성자이자 유출자로 의심받고 있는 박관천 경정의 직속상사,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 (사진=윤성호 기자)
=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공식적인 이유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문건이 언론사에 유출된데 따른 책임을 지는 형식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흐르는 내막을 보면 결국은 '정윤회씨와 십상시의 모임'에 대한 보고서가 결국 조응천 전 비서관의 앞길을 막은 셈이 되는 것이다.

이 문건이 보고되기 전에는 조응천 비서관과 3인방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응천 비서관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서 내부감찰에 적극적으로 황동을 했고 이것이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충돌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조응천 비서관은 대통령 친인척 중 박지만 EG 회장과 서향희 변호사에 대한 관리를 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박지만 EG회장이 사람을 가리는 타입이어서 그 전부터 잘알고 지내는 조응천 비서관이 박 회장의 관리를 책임진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윤회 문건'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고 비서실장의 사퇴설이 나도는 소문의 진원지를 파악한 것이지만 그 문건이 공개되거나 대통령에게 보고되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올 내용이다.

조응천 비서관의 손을 들어주면 정윤회씨나 문고리 3인방과 정면으로 충돌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청와대는 문고리 3인방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조응천 비서관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의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검찰 후배이면서 자신의 직속부하인 조응천 공직기강 비서관을 버리고 현실적인 권력실세로 불리는 문고리 3인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윤회 문건'을 보고 받은 뒤 후속 감찰조사를 지시했다면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정윤회씨나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이른바 십상시의 실체, 그리고 비선라인의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풍파 대신에 안정을 현상유지 또는 안정을 선택한 셈이다.

▶ 문건의 내용이 김기춘 비서실장의 말대로 '찌라시' 수준이 맞는 거냐? 아니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냐?

= 청와대 관계자나 문건에 거론된 사람들이 말하는 0%의 진실도 없는 완벽한 소설이라거나 '찌라시' 수준이라는 해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차가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정현 홍보수석과 김덕중 국세청장은 경질됐기 때문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언론인터뷰에서 "해당 문건 내용의 60% 정도는 사실에 부합한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문건에서 언급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이 문건이 60%이상 신빙성이 있다고 말한 것은 '정윤회 문건'이 정식 감찰결과 보고서는 아니지만 신빙성이 높은 동향보고서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정윤회 문건'은 언론사로 치면 일종의 정보보고와 유사한 수준의 동향보고서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 동향보고서를 토대로 실제 십상시 모임이 있었는지와 정윤회씨가 청와대 비서관들과 자주 만나 인사문제 등을 논의했는지를 조사할 단서라는 얘기인 것이다.

이와관련해 JTBC는 정윤회씨 관련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실제 그 모임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박관천 경정이 "박동열씨가 실제 모임에 참석한 인물"이라고 조응천 비서관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박동열씨가 모임에 참석한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 아니라 모임에 참석해서 들었다는 얘기다.


▶ 직접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이냐?

'그림자 실세' 정윤회 씨, '십상시' 모임 장소로 알려진 신사동의 중식당 (사진=박종민 기자)
= 그렇게 보도를 했고 법조계에서나 청와대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

JTBC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윤회씨와 이른바 십상시 모임은 실체가 있는 것이고 문건에서 거론된 말들도 소설이 아닌 팩트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다소 거친 표현의 동향보고서를 왜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했는지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박동열씨는 직접 모임에 참석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열씨는 안봉근 비서관과 동향출신으로 평소에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이 정윤회씨와 십상시의 모임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실제로 박동열씨가 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면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문건유출 경로는 밝혀졌나?

=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어제 검찰의 수사를 보면 어느 정도 실체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9일 박관천 경정과 제보자인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이틀 연속 불러 문건 작성 경위와 제보 배경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또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빼돌린 혐의로 서울청 정보분실 소속 경찰관 두명을 체포했다. 체포된 경찰관들은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온 문건을 대기업인 한화측과 언론사에 뿌린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정윤회 문건'의 원본을 확보했으며 한화그룹 사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한데 이어 청와대 문건을 받아본 한화그룹 대관담당 직원을 소환해 밤늦게까지 조사를 벌였다.

검찰의 이런 행보는 문건의 유출자가 박관천 경정이나 조응천 전 비서관이 아니라 제3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 김기춘 비서실장이 자신이 지시했다는 보도를 한 기자를 왜 고소한 것이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그게 고소할 사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비서실에 일어나는 일들은 비서실장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공식보고서이고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문건이 비서실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보도가 어떻게 김기춘 비서실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취임한지 4개월여만에 비서실장 사퇴설이 나돈다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비서실장의 거취와 관련된 사안을 비서관이 독단적으로 조사해서 보고한다는 청와대의 속성상 맞지 않는 일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업무에 밝은 한 법조인은 "그런 보고서는 비서관이 독단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나 박관천 경정의 진술대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비서실장 사퇴설'의 진원지를 추적하다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이른바 십상시의 모임이 있다는 보고를 했는데 이 보고를 묵살했다면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을 보고 받고도 후속 감찰조사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일종의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먼저 자신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기자를 고소함으로서 이를 부인하고 동시에 다른 언론의 후속 보도를 막고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세계일보에 이어 동아일보 기자를 고소함으로서 의혹을 보도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관련 보도와 관련해서도 한겨레 신문과 CBS를 고소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판례에 비춰 청와대 관계자들의 고소가 실제 언론사의 형사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분석한다. 그런데도 고소를 남발하는 것은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소송을 당한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고 언론사의 위축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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