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밑바닥을 치면 다음에는 올라가는 거예요"
프로농구 전주 KCC의 센터 하승진은 9일 오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의 경기에서 3쿼터 중반 이후 코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왼 발목을 다쳤기 때문이다.
KCC는 결국 하승진의 공백을 이겨내고 웃었다. SK를 82-72로 따돌렸다. 비록 승부처에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하승진을 빼고는 KCC의 승리를 논할 수 없다. 하승진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22분동안 15점 16리바운드를 올리며 상대 골밑을 초토화시켰다.
"근래 들어 몸이 가벼웠다"는 하승진은 동료들이 고맙기만 하다. 벤치에 앉아 동료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김태술마저 허리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나머지 선수들의 노력으로 일군 승리다.
하승진은 "진짜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다들 너무 잘해주니까 좋았다. 리바운드, 궂은 일을 하나라도 더 하려는 모습이 고마웠다. 우리의 다른 모습, 다른 팀 컬러를 봤다. 앞으로 괜찮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KCC는 원래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로 유명한 팀이다. 특히 하승진이 있을 때 그랬다. 하승진이 정상 컨디션을 되찾는 시즌 중반부터 무섭게 치고 나가 결국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하승진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KCC는 이날 이겼지만 여전히 9위다. 8승16패를 기록 중이다. 워낙 성적이 좋지 않다보니 평소 자신만만한 하승진조차 오랜만에 이겼다고 해서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이 민망하게 느껴진다.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질 때도 이길 때도 열심히는 하는데…"라며 운을 띄운 하승진은 "요즘은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우리가 슬로우 스타터라고 말하기도 민감하다. 그래도 좋아질 것으로는 생각하는데, 5~6연승 정도 하면 그때 거침없이 말하겠다"고 웃으며 말을 아꼈다.
기자회견실에 정희재가 동행했다. 이날 34분40초 동안 출전해 11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경기 후 인터뷰는 데뷔 후 처음이었다.
정희재에게 물었다. 앞으로 KCC가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지, 하승진이 대답을 머뭇거렸던 그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정희재는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하승진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나"라며 웃었다.
정희재는 "잃을 게 없어서"라며 하승진에게 동의를 구했다. 하승진은 그제서야 당당하게 말했다. "맞다. 밑바닥을 치면 다음에는 올라가는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여전히 갈 길이 먼 KCC가 슬로우 스타터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Sk전 승리는 그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