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논리에 따라 빠르게 돌고 도는, 진득하게 기다려 주지 않는 국내 극장 시스템 안에서 상영에 들어간지 며칠 만에, 혹은 걸려 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영화들이 부지기수인 것이 현실이다.
그 와중에 세상을 향해 "함께 살자"고 외치는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 제작사 명필름)가 뜻 있는 관객들과 극장 측의 호응에 힘입어 장기상영에 들어간 것은,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는 영화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8일 서울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에서는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상임고문을 주축으로 새정연 당원들과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비정규직 노동자 100여 명이 함께 카트를 단체관람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카트 상영 전에 만난 정동영 고문은 CBS노컷뉴스에 "카트라는 영화 한 편이 국회의원 300명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다"며 "다급한 시대적 과제인 노동 문제를 두고 정치가 겉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의 본령은 사회 갈등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서 녹이고 조정하고 완화하는 것인데, 고통스럽고 슬픈 현실을 눈앞에 두고 정치가 그들만의 잔치만 되풀이하면서 국민의 무관심과 냉소를 부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사실 우리가 집권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고 구속되고 비정규직이 됐으며, 가장 많은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며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사과하고자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대 정당체제 아래서 한쪽은 사회·경제적 강자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는 반면, 반대쪽의 약자를 대변해야 하는 진보정당은 지리멸렬해 있고, 제1야당은 중도론, 우클릭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는 곧 새누리당의 제2중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치가 노동을 배제한 채 행해지고 있는 점이 몹시 안타깝다"고 말했다.
객석이 차고 불이 꺼지면서 소란스럽던 상영관은 이내 정적이 감돌았다. 극중 대형마트 비정규직 계산원 혜미(문정희)가 손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는 누군가의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노조를 꾸린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단이 사무실에서 사측을 기다리던 중, 밖에서 한 직원이 대표단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불을 켜고 들어왔다가 다시 끄고 나가는 장면에서는 분노 실린 듯한 실소가 터져나왔다.
상영시간이 흐를수록 상영관 안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짙어졌고, 사측이 공권력과 용역을 동원해 노조 측을 궁지로 몰아 가는 장면 장면에서는 코를 훌쩍이고 헛기침하는 소리가 잦아졌다.
객석을 채운 이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영화 상영 뒤 만난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 손모(37) 씨는 "많은 영화들이 상업성만 추구하는 환경에서 카트가 내 얘기, 우리 얘기를 그렸다는 데 많은 관심이 생겨 보러 왔다"며 "저 역시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비정규직이건 파업이건 아무 생각 없었고, 주변에서 그런 현장을 보면 '왜들 저러나' 싶었는데, 막상 제게 닥치니까 힘든 현실을 보게 됐다"고 전했다.
손 씨는 "노조한다니까 돈 못 버는 쪽으로 보내 일을 시키는 사측의 행태를 봐 오면서 이 영화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며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단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달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