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좋지만 갈 길 먼 도서정가제

[2014 문화 10대뉴스 ②] 새 도서정가제 시행

올해 문화계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2014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CBS노컷뉴스가 문화(공연, 출판, 미디어, 문화일반)계의 다양한 이슈들을 묶어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편집자 주]

<연재 순서>
①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② 새 도서정가제 시행
(계속)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11월 21일 새 도서정가제가 전면 시행됐다. 신간, 구간 상관없이 모든 책의 할인율을 최대 15%(가격할인 10%+간접할인 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이전에는 18개월 미만 신간은 최대 19%까지 깎아줬고, 18개월 이상의 구간과 실용서, 초등학습 참고서는 제한 없이 할인이 가능했다.


시행 20여일 째를 맞았지만 새 정가제가 안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우선 소비자들은 '책값만 비싸지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다. 장기적으로는 거품이 빠지면서 책값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할인율 축소로 당장 책값 부담이 늘었기 때문에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제2의 단통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책값이 비싸져 전반적으로 책을 더 안 읽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유엔 회원국 중 161위다. 지난해 가구당 월 도서구입비는 1만8690원에 불과했다.

구간의 경우, 최근 재정가 책정을 통해 3000종의 책이 평균 57% 인하했다. 최고 80%까지 가격을 내린 책도 있다. 그러나 '새 정가제로 책값만 올랐다'는 소비자의 인식은 여전하다. 재정가로 일부 책의 가격이 내려간다고 해도 온라인 서점에서 대폭 할인했을 때만큼 책값이 싸지 않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 재정가 대상과 할인폭은 출판계의 자율적인 결정사항인 만큼 소비자가 구매하기 원하는 책을 큰 폭으로 할인할지도 미지수다.

새 정가제는 거품이 낀 책값을 내리고, 고사 직전의 동네서점과 출판사를 살리자는 게 취지다. 유통시장의 35% 이상을 점하는 온라인 서점이'슈퍼갑'으로 행세하는 반면 동네서점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2003년 2017개였던 66㎡ 미만 소형서점은 10년 만에 887개로 줄었다. 그러나 온라인 서점을 찾던 소비자가 동네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길지는 두고봐야 한다.

반값 할인 등이 없어지고, 할인율을 19%에서 15%로 제한했지만 여전히 온라인 서점에 유리하다. 제휴카드 할인, 무료배송, 경품에 대한 규제는 15% 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서점에서 책을 살 때 특별한 이점이 없다면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구매하던 기존 습관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면 동네서점 보다는 전자책이나 중고서점을 찾을 가능성이 많다.

더 큰 문제는 출판사에서 서점에 공급하는 책 가격(공급률)이 동네서점보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에 유리하게 책정된다는 것이다. 현재 출판사들은 온라인·대형서점에는 정가의 40~60%, 동네서점에는 70~75%에 각각 책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급률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동네서점은 열세일 수밖에 없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박대춘 회장에 따르면 출판유통·서점·소비자단체로 구성된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산하 도서정가 자율협의회는 동네서점의 공급률을 지금보다 낮추기 위한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부 역시 향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 하면서 업계의 가격담합 등 공공거래 질서를 해치는 행위가 있는지 엄중 감시해야 하고, 중소 출판사·동네 서점은 소비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마케팅 전략 등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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