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지상에서 하늘의 별이 된 지도 한달이 훌쩍 넘었다.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남은 가족들은 고인의 수술을 집도한 S 병원 강모 원장에게 의료 사고의 책임을 물었고, 강 원장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 싼 진실공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고(故) 신해철은 가수였지만, 노래만 하지는 않았다. 그는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촌철살인 격의 말을 던졌다. 이로 인해 눈총을 사는 일이 있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여타 연예인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서슴없이 드러냈다.
"동방신기와 비의 노래를 유해매체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국회 자체를 유해장소로 지정하고 뉴스를 차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국회 역시 19금이다". (2008년 12월 18일 MBC '100분 토론')
"유모차 엄마들을 체포하고, 공무원들을 물갈이하고, 방송을 장악한다. 교과서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가의 정책을 펼칠 때도 전문가 집단에게조차도 이념을 들이 댄다". (2008년 12월 18일 MBC '100분 토론')
"물에 빠진 사람을 우리가 구하지 않았다는 죄의식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민주주의를 되돌리는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 죽었다". (2009년 6월 22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헌정공연에서)
논란이 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개진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가요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댄스 위주 음악가와 라이브 음악가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퍼포먼스 가수의 립싱크는 있는 그대로 즐기고, 라이브가 듣고 싶으면 콘서트장에 가라". (2006년 3월 10일 MBC 라디오 '고스트네이션'에서)
"지금은 음악이 편안하게 소비되는 시대다. 나는 이런 시대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지만, 확실한 건 그것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0년 2월 27일 QTC '모먼트 오브 트루스'에서)
"MP3가 생겨나고 이동통신업체가 음원 서비스를 맡는 등 창작 환경이 많이 바뀌어왔는데 그때마다 착취당하는 것은 항상 음악가들이었다". (204년 7월 26일 바른음원협동조합 창립총회에서)
"'마왕'은 제 청춘의 일부분이에요. 지금 그것이 찢겨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팬 마유진 씨)
한 팬의 말처럼 '마왕'은 이 시대 청춘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노래로, 때로는 말 한 마디로 사회 속에서 지쳐가는 청춘을 다독여왔다. 28일부터 31일까지, 3일 간 그의 빈소를 찾은 1만 6천 여 명의 일반인 조문객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그의 노래엔 청춘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나에게 쓰는 편지' 中)
"남들이 뭐래도 네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마 힘이 들 땐/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마/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해에게서 소년에게 中)
그가 지난 2001년부터 진행했던 MBC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은 청춘들과 소통하는 또 다른 매개체였다. 신해철은 '고스트 스테이션'을 통해 해외 및 국내 밴드를 소개하고, 사회적 통념을 깨는 이야기들을 전했다. 고유명사가 된 '마왕'이라는 별명도 여기에서 얻었다.
당시 10~20대였던 지금의 3040세대는 신해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와 교감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해주지 않는 말들이 이들을 자라나게 했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청춘을 다잡았다.
"공부 못 하고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마라. 어떻게 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마라". (2014년 7월 5일 tvN 'SNL 코리아' 中)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 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신경을 쓰고 있다". (2014년 7월 21일 JTBC '비정상회담' 中)
"(백수가 되는 것이) 젊은이들의 정신력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운전하다가 기름이 떨어졌을 때 보험사 직원이 와서 적어도 주유소까지는 갈 수 있을 만큼의 기름을 제공하듯이 최소한을 도와주는 것이 복지다. 충분한 사회, 환경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백수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2014년 11월 2일 JTBC '속사정쌀롱' 中)
고(故) 신해철은 죽음 이후에도 약자의 편에 서게 됐다. 유가족들이 의료사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억울한 의료사고와 그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초 발의된 법안까지 새삼 '신해철법'으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신해철법'은 의료기관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현재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의료조정중재위원회가 있지만 피해자가 조정을 신청해도 병원에서 이를 거부하면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없다.
아직도 고인의 죽음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유가족은 사전 동의 없는 위축소수술이 이뤄졌다고 주장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소장과 심낭에 생긴 천공에 대해 '수술에 따른 의인성 손상'을 의심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강 원장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동의 없는 위축소수술, 적절치 못한 사후 조치 등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위벽강화수술을 했다는 주장과 함께 오히려 고인이 금식 조치를 어겼다는 반박을 펼쳤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달 29일 신해철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집중 조명했다. 방송은 아내 윤원희 씨, 매니저, S 병원 사례자들, 전 S 병원 간호사, 외과 전문의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전문의들은 위축소수술 가능성에 힘을 실었고, 심장 이상을 발견할 기회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간호사는 강 원장이 비만수술을 하며 맹장, 담낭 등의 장기를 무단으로 적출해 왔고, 복강경 수술 동영상은 반드시 녹화한다고 폭로했다. 윤 씨와 매니저에 따르면 금식 지시도 따로 받은 것이 없었다.
윤 씨는 의료과실 규명을 위해 외롭고 긴 싸움을 선언했다.
일반인들도 번번이 지는 의료사고 분쟁에 뛰어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남편 신해철이라면, 분명히 억울한 피해자들의 편에 설 것이라는 판단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방송에서 눈물을 쏟으며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신해철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사람 같다. 아마 욕을 먹으면서 100분 토론에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 남편과 제일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이어 "뭔가 억울하거나 힘들 수 있는 의료적인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로라도 남는다면 아마 남편이 그것으로 위안을 삼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