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공정해야 한다…CGV·롯데시네마 엄단을"

공정위 '시장지배 지위남용 혐의' 사건심의 재개…영화계 "빠른 조치 촉구"

공정위가 4일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혐의에 대한 사건심의를 재개함에 따라 영화계가 엄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서울 명륜동 CGV대학로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다룬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멀티플렉스 차별행위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 현장. (사진=황진환 기자)
#1. "대형 멀티플렉스인 CJ CGV, 롯데시네마 등에 대한 공정위의 어떠한 제재 조치가 내려지더라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영화산업에 참여하는 대기업들이 '시장은 공정해야 한다'는 인식만 갖게 되더라도 큰 성과를 얻는 것이다."


#2. "심각하다. 김치를 사야 하는데, 모든 김치가게를 대기업이 잡고 있어 그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먹을 수조차 없는 격이다. 국가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과연 대형극장들이 영화 콘텐츠를 유통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때다. 공정위의 엄단이 요구된다."

#3. "영화는 특정한 시기에 개봉해 관객을 만나야 하는 매체인 만큼 빨리 조사하고, 빨리 조치를 내리는 신속한 대응이 이뤄져야만 한다. 공정위가 이러한 영화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이른 시간에 제재 결정을 내려 주기를 바란다."

영화계가 3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CJ CGV와 CJ E&M, 롯데쇼핑에 대한 공정위의 발빠른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공정위는 전날 전원회의를 갖고 이들 업체가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는 대신 자체 시정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낸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행위 증거의 명백성 여부 등 사건의 성격, 시간적 상황, 소비자보호 등 공익에의 부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의의결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이들 업체는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그룹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만든 영화에만 상영관과 시간을 늘려주는 식으로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4일 이들 업체의 혐의에 대한 사건심의를 논하는 전원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영화계 인사들은 혐의가 명백한 이들 업체에 대한 공정위의 엄단과 빠른 제재 결정을 주문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공동 연출한 이상호 기자는 CBS노컷뉴스에 "기존에는 영화 외부인 입장으로 대형극장의 행태를 보면서 당위론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부에 들어와서 보니 정말 심각하게 유통이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를 테면 김치를 사야 하는데 모든 김치가게를 대기업이 잡고 있는 격이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이빙벨은 10월 23일 개봉한 이래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전날까지 4만 3,229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몰이를 하고 있지만,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상영관을 내 주지 않아 '외압' 논란을 불렀다. 현재 다이빙벨은 공정위에 이들 대형 멀티플렉스의 불공정 행위를 재소한 상태다.

이 기자는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것이 다양성과 접근권인데, 국내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은 자기네가 만들고 배급하는 영화만 쇼윈도우에 깔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들은 외면하고 있다"며 "대기업의 계열사 밀어주기보다 더한 '땅 짚고 헤엄치기' 행태를 보이는 그들이 과연 영화를 유통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어 "자유시장 질서를 유린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공정하기를 바랄 뿐"이라며 "수익성이 있는 영화조차 극장에 걸지 않는 식으로 다양성과 수익성을 부정하는 세력을 묵인할 경우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문화 독재국가로 비쳐질 우려가 있으니,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정위가 엄단해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스크린 95%25 독점…"수직 계열화 정리 이뤄져야"

앞서 10월 1일 영화계 주요 단체와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영화상영 및 배급시장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1주일 최소상영기간 보장 △배급사와 계약 없는 교차상영 금지 △개봉 주 월요일 예매 개시 △배급사와 계약 없는 무료 초대권 발급 금지 △정산기간 단축 등에 합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계 관계자는 "당시 합의 내용에 보완할 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것만 제대로 지켜져도 지금과 같은 불공정 행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기업이 제작부터 배급, 상영까지 모든 것을 주무르는 것은 한국의 이상하고 특수한 상황이다. 멀티플렉스 3사의 스크린 점유율이 전체의 95%에 가깝다는 것만 봐도 명백한 시장 독점을 알 수 있다"며 "이들 멀티플렉스에서는 개봉관을 적게 연 뒤 분위기를 보다가, 영화가 잘 될 것 같으면 확 몰아주는 식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권력을 휘두른다"고 토로했다.

결국 법적 테두리 안에서 상시적인 감시와 제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어 "영화가 1년 내내 극장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개봉하는 특징을 지닌 만큼 시정조치든, 시정명령이든 공정위가 발빠르게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멀티플렉스의 불공정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투자부터 제작, 배급, 상영까지를 총괄하는 현재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영화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정지영 감독은 "관객이 많이 오면 극장 문을 열고 없으면 닫는 게 시장질서인데, 어떠한 압력이 작용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아 시장 질서가 깨지고 작은 영화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공정위의 처벌 수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멀티플렉스들이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이 공정해야 한다'는 인식을 대기업들이 갖게 되면 큰 성과"라고 전했다.

정 감독은 특히 "자기들이 만들어 배급하는 영화를 시장의 수요공급과 관련 없이 많이 거는 것은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수직계열화를 정리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제작부터 투자, 배급, 상영까지를 주무르는 것은 막강한 힘이다. 지금은 이 힘에 줄을 서야만 하는 구조인데, 힘이 강해지면 부패하기 마련이니 법제화를 통해 수직 계열화를 정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