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지난 시즌 마지막 날 믿을 수 없는 드라마를 썼다. 리그 1-2위 팀이 시즌 최종전을 치렀고 마지막 순간에 터진 김원일의 결승골이 9부 능선을 넘은 울산 현대의 우승 가능성을 제거하고 포항에게 짜릿한 우승의 감격을 선사했다.
한 시즌의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각본없는 드라마. 종목을 막론하고 2013년의 K리그 클래식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드라마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왔다. 올해는 포항이 냉혹한 드라마의 희생양이 됐다.
포항은 30일 오후 포항 스틸야드에서 수원 삼성을 상대로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최종전을 치렀다. 3위 포항은 4위 FC서울에 승점 3점을 앞서있어 비기기만 해도 3위 수성이 가능했다.
3위는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이 주어지는 자리라 의미가 남달랐다. 서울은 포항에 골득실은 앞서있었다. 서울이 이기고 포항이 져야만 순위가 바뀌는 상황이었다.
후반 3분 포항의 김광석이 선제골을 터뜨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포항의 3위 수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때마침 제주에서는 홈팀 제주 유나이티드가 전반 19분 황일수의 선제골로 서울을 코너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대반전의 서막
제주 경기에서 후반 24분 서울의 윤일록이 골을 터뜨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른 공을 잡고 페널티박스 왼쪽 구석에서 정확하게 골문 구석으로 공을 차 넣었다. 하지만 서울은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자력으로 순위를 뒤집기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포항에서 반전의 서막이 펼쳐졌다. 수원의 산토스가 후반 34분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찬스에서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차 골을 터뜨렸다.
제주와 포항 경기가 나란히 1-1이 됐다. 여전히 포항에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수원의 정대세가 또 한차례 반전을 일으켰다. 후반 39분 염기훈의 크로스를 받아 환상적인 헤딩골을 터뜨렸다. 특유의 팀 컬러를 잠시 내려놓고 수비 중심의 경기 운영을 펼치던 포항은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3위 자리를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반전의 완성
포항에서 산토스의 동점골이 터진 순간 제주에서는 제주의 이용이 레드카드를 받았다.
서울에게 필요한 것은 한 골이었다. "축구에서는 많은 기적이 일어난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제주 원정을 떠난 최용수 감독. 그의 말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44분 오스마르의 왼발 슈팅이 제주의 골망을 흔들었다.
서울은 제주를 2-1로 꺾었고 포항은 수원에 1-2로 졌다. 상반된 스코어처럼 양팀의 운명도 극적으로 엇갈렸다. 서울은 포항과 나란히 승점 58을 기록했지만 골득실에서 앞서 3위를 차지했다.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의 0.5장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최용수 감독은 오스마르의 결승골이 터진 순간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포항은 충격에 빠졌다. 기적이 만들어낸 희비는 짜릿했고 누군가에게는 잔인했다.
◆황선홍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수원전이 끝나고 황선홍 감독은 무거운 얼굴 표정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여러 면에서 믿기지 않는 결과다. 상당히 당황스럽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선홍 감독은 "무엇보다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 상당히 많이 아쉽다.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지만 실점 장면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이 패인이다. 선수들은 준비한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수비 중심의 경기 운영을 펼친 것에 대해 포항 만의 색깔은 아니었다며 "오늘 같은 경기에서는 내용과 결과를 다 얻기는 어려웠다. 일단 결과를 만들어놓자는 생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득점왕도, 도움왕도 마지막 날 갈렸다
순위 반전의 발판이 된 산토스의 골은 득점왕 경쟁에서도 반전을 일으켰다. 산토스는 14호 골을 기록해 시즌아웃이 된 뒤에도 오랜 기간 득점 랭킹 1위를 지켰던 전북 현대의 이동국(13골)을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다.
전북의 집안싸움으로 펼쳐진 도움왕 경쟁에서도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승기가 후반 21분 한교원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10호 도움을 기록했다. 이로써 팀 동료 레오나르도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출전 경기수가 적어 도움왕 등극을 확정지었다.
순위도 모자라 득점왕과 도움왕이라는 타이틀마저 시즌 마지막 날에 가서야 주인을 찾았다.
한편, 전북은 울산과의 최종전에서 1-1로 비겨 K리그 역대 최다인 10연승 신기록 달성을 아쉽게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