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난무하던 소년원 연극의 반전

소년원 아이들이 직접 공연한 치유 연극 '아름다운 아이들 2014'

지난 11월 1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소년원(고봉중고등학교) 강당에서 ‘아름다운 아이들 2014’라는 제목의 특별한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소년원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연극으로, 그들이 실제로 가정과 사회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재소 중인 학생들의 가족뿐 아니라 지역사회 의원과 검경, 종교인과 일반인 등이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소년원을 찾았다.

18일 오후 서울소년원에서 열린 연극 '아름다운 아이들 2014'. 소년원에 재소 중인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연극이다.(위) 가족과 앉아 있는 친구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아래) (황진환 기자)
가족이 온 학생들은 가족 옆에 앉아 연극을 관람했다. 오랜만에 만난 손주 얼굴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한 할머니는 쉬지 않고 학생의 얼굴을 만져댔다.

가족이 오지 않은 학생들은 고개를 뒤로 돌린 채 부러운 듯 그들을 지켜봤다. 혹시라도 가족이 깜짝 방문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강당 뒤쪽 출입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서울소년원 아이들. (황진환 기자)
공연은 아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살다가 가출을 하고, 밖에서 배회하다 결국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수감됐는지를 알 게 했다.

세 살 때부터 할머니랑 살고 있는 ‘아이1’은 1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아빠에게 늘 맞기만 한다. 18년을 함께 산 아빠가 새아빠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아이2’, 아빠가 입원해 밤늦게까지 일만하는 엄마 때문에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3’, 새엄마가 못 마땅한 ‘아이4’ 등. 특별하지만 어쩌면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해서 그랬을까, 연극은 시작부터 욕설이 난무했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선생님께 대들고, 친구들과 가출했다 다른 사람의 지갑을 손을 대거나 폭행 등의 잘못을 저질러 끝내 소년원에 간 학생들.

학생들의 연기는 어설펐지만 진지했다. 같이 수감 중인 친구의 연기가 웃겼는지 관람하는 학생들은 연신 웃어댔다. 그래도 부모에게 맞거나 버림받는 상황에서는 말없이 공연을 지켜봤다.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이 끝난 뒤 관객 참여형 연극이 진행됐다. (황진환 기자)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공연 후 관객이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애초 이 연극은 관객 참여형 연극이었다. 연극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 불행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낫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관객이 직접 참여해서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1년 만에 집에 온 아빠가 본드를 분 자식을 봤을 때 손찌검이 아니라 대화를 했다면 ‘아이1’은 가출을 하지 않았을까. 아빠가 새아빠라는 사실을 엄마가 술 취한 상태에서 주정하듯이 말하지 않고 자녀를 배려하며 진지하게 말했다면 ‘아이2’는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

‘쟤는 문제아니까 뭘 하든 냅둬’라고 한 교사가 그 아이를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대화하려 했다면 ‘아이3’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등의 상황을 관객이 집적 연기해보는 것이다.

연극에 직접 참여해 본 의왕경찰서 아동청소년계 이상희 경사. (황진환 기자)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랐다. 몇몇 어른들이 나와 '아이1'과 '아이2'에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가출을 택했다. 보통 학교 드라마 같은 걸 보면 부모 또는 선생님이 다가가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잘할게’라고 말하면 아이들도 반성하는데 현실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의 속이 삐뚤어진 건지, 대화 방법이 잘못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아이들은 다른 상황을 연기하고도 ‘그래도 집을 나갔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이다. 아무리 설득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연극은 점점 지루해져만 갔다.

◇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의 대답이 달라졌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김상중 씨 톤으로)

그런데 학생 한 명이 무대에 오르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됐다. 그 역시 소년원에 수감 중인 학생이었다.

학생은 때리는 아버지 역을 맡겠다고 했다. 이어 본드를 분 아들을 보자마자 잠시 침묵하더니 뜬금없이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예상치도 못한 대사에 관객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을 찍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사진을 찍고 난 뒤 목욕탕에 가 서로 때를 밀어주자고 했다. 관객들은 더욱 궁금한 표정으로 그 상황극을 바라봤다. 이어 학생은 아들의 때를 밀어주며 나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내가 마땅한 일자리도 없고, 밖에서 이일 저일 한다고 너에게 소홀했다. 네가 본드까지 불 줄은 몰랐다. 그동안 너에게 무관심하게 굴어 미안하다. 앞으론 아빠도 술 끊을게. 너도 본드 하지마. 우리 같이 잘하자.”

상황극을 마친 후 사회를 맡은 노지향 대표(연극공간 해)가 학생에게 물었다. “왜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제가 아빠와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함께 사진 찍고, 목욕탕 가는 거요.” 아이의 바람이 담긴 연기였던 것이다.


대답을 하던 학생이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컥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 얘기를 잘 못해봤어요. 맨날 (나를) 두드려 패기만 하고. 여기(소년원) 와서 아버지랑 통화는 하는데 서로 아무 말이 없어요. 아버지는 술 드시는 것 같아요. 한숨만 쉬시고요. 다 제가 사고 쳐서 그런 거겠죠. 부산에 계셔서 오시지는 못하는데, 가끔 오셔도 서로 대화는 없고.”

관객 참여 시간에 아버지 역을 연기한 학생은 노지향 대표와 이야기하던 도중 눈물을 흘렸다. (위) 학생의 진솔한 이야기에 관객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아래) (황진환 기자)
아이들의 거친 행동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그동안의 상처가 연극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빠 만나면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려고요. 이번엔 제가 먼저 말해보려고요.”

학생의 진솔한 고백을 들은 관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강당은 용기를 낸 학생에게 쏟아지는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아들 역을 맡은 아이는 "아빠가 이렇게 나오면 가출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계속 가출할 거라던 아이들의 답변이 처음으로 달라진 것이다.

학생들은 공연이 끝난 뒤 면회 온 가족들과 간식을 즐겼다. 이때만이 유일하게 바깥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황진환 기자)


◈ 연극을 통해 '나'를 표현할 줄 알게 된 학생들

연극 ‘아름다운 아이들 2014’는 (사)행복공장이 지난 3월부터 매주 1회 서울소년원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함께 진행했던 치유 연극 워크샵의 결과물이었다.

욕 외에는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던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서툴지만 조금이나마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배웠다.

연극을 연출한 노지향 대표는 “눈을 떨군 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들이 몇 개월 사이에 많이 변했다. 연극을 통해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줄도 알고 남을 배려하는 여유도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연극 수업을 들었던 아이들의 글을 보면 그 변화가 더욱 느껴진다.

“살면서 나에게 잘못한 점 - 내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밤에 사고치고 다닌 것. 부모님에게 욕을 하고 말도 안 들었던 것.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 드린 것. 학교를 잘 안 나가고 매일 사고치고 다닌 것. 매일 공부도 안 하고 게임만 한 것.”

“가족 - 계속 실망시켜도 계속 믿어줘서 미안해지게 만드는 사람. 무심하게 해도 계속 다가와 미안해지게 만드는 사람. 우리 부모님, 항상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내게 만약 300만 원의 수입이 있다면 200만 원을 적금하여 나보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고 싶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은 매일 하루하루 사장 눈치를 보며, 집주인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허수아비. 나는 이 더러운 세상을 바꾸고 싶다.”

“나에게 연극이란,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타임머신’. 나의 잘못을 반성하게 만드는 ‘양심’. 나의 화를 끝까지 돋우는 ‘가마솥’. 나의 마음을 고쳐주는 ‘마음 치료사’. 내 마음 속 차가운 고체를 녹여주는 ‘뜨거운 물’. 과거는 과거일 뿐, 나는 연극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성장하였다.”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연극을 통해 많이 깨닫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공연이 끝난 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메모를 남겼다. 대부분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사랑한다, 너희 탓이 아니다' 등의 내용이었다.

어른들이 남긴 메모.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황진환 기자)
연극을 연출한 노지향 대표는 “아이들이 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어쩌면 그 단초는 어른이 제공한 것일 수도 있다"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연극은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다.

관객 참여 시간에 연극에 참여했던 의왕경찰서 아동청소년계 이상희 경사는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데, 보통 청소년과 다를 바가 없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며,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가정과 부모의 교육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역시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찍지 말고 보살피고 선도하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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