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문정동에 사는 김모(43·여) 씨는 주말을 이용해 인근 CGV송파점에서 두 초등학생 자녀와 볼 영화를 예매하고자 집 컴퓨터 앞에 앉았다.
CGV 홈페이지(www.cgv.co.kr)에 들어가 토요일인 22일 송파점의 상영시간표를 확인한 김 씨는 눈을 의심했다. 상영작이 '인터스텔라'와 '헝거게임: 모킹제이(이하 헝거게임3)' '퓨리' 단 세 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하며 이튿날인 일요일 시간표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로 외화 세 편의 제목만 모니터 화면에 떠 있었다.
김 씨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이 지역은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가정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가까운 극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를 걸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대형 극장들이 영화 편식을 한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왔지만 직접 겪어보니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날 오전 11시께 CGV 홈페이지의 송파점 상영시간표는 토요일의 경우 인터스텔라가 3개관 19회, 헝거게임3가 1개관 8회, 퓨리가 1개관 7회 상영으로 확인됐다. 일요일은 인터스텔라가 3개관 18회, 헝거게임3가 1개관 8회, 퓨리가 1개관 7회 상영으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오후 1시께 송파점의 토요일 상영시간표에는 큰 변동이 있었다. 상영관이 인터스텔라에게 더욱 집중된 것이다.
보통 주말 상영작 예매는 그 주 화, 수요일에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경우처럼 하루 전 갑작스레 상영작이 변동돼 관객들의 혼란을 부르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 시각 인터스텔라는 4개관 24회 상영으로 1개관 5회 상영이 추가됐다. 헝거게임3는 1개관 8회로 변동이 없었고, 퓨리가 2개관 8회 상영으로 1개관 1회 상영이 더해졌다. 이어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2개관 5회, '카트'는 1개관 2회, 애니메이션 '부니 베어: 롤라 구출 대모험'은 1개관 1회 상영이 잡혀 있었다.
이에 대해 CGV 측 관계자는 "CGV 송파점에 확인해 본 결과 총 7개관 가운데 객석 수가 적은 2곳의 예매가 이날 오전까지 안 열렸던 것은 사실"이라며 "담당자인 프로그램 매니저의 병가 탓에 업무에 차질이 생겨 오후에 갑자기 열게 됐다. 해당 직원의 개인적인 실수"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CGV 관계자도 "프로그램 매니저의 병가로 시스템상 오류가 생긴 것이 맞다"며 "주말 예매는 그 주 초에 여는 게 맞고, 매주 상영작 선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지점들에 내려보내는 본사 입장에서는 미리 예매를 열어 관객들을 더 많이 받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고의로 예매 오픈을 늦추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영화계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멀티플렉스들이 극장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를 부린다는 것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멀티플렉스의 상영작 편성은 보통 본사 프로그램팀에서 배정해 주는데, 사이트 별로 이 영화는 1개관에 저 영화는 0.5개관에 걸라는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다"며 "이렇게 적게 걸어 두고 어떤 영화가 잘 될 것인지 소위 간을 보면서 잘 될 것 같은 영화의 상영 횟수를 늘리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결국 관객들의 영화 선택권이 대형 멀티플렉스 측의 수익 극대화 논리에 따라 제한되고 좌지우지된다는 얘기다.
영화계 또 다른 관계자는 "주말 100석 상영관이 배정된 상영작이라도 잘 될 기미가 보이면 300석 규모의 상영관으로 옮겨 매출 극대화를 꾀하는 셈"이라며 "특정 영화에 상영관을 이미 배정했더라도 예매 관객이 없는 동안에는 그 배정을 취소할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봐서 잘 되는 영화 쪽으로 관을 몰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