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軍 '조의금 횡령', '사망원인·부실수사'는 손도 안 댔다

장관 '엄정수사' 지시도 무시…사건 조작·은폐 의혹 하나도 안밝혀

(자료사진)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자살한 병사의 조의금을 횡령한 혐의로 군사법원에 기소된 당시 부대장이 무죄 판결을 받아 꼬리자르기와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데 해당 병사가 숨질 당시 가혹행위가 아닌 지병으로 앓고 있던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는 헌병대의 엉터리 수사결과와 관련해서는 당초 약속과 달리 군 수사기관이 손도 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軍 "사망원인 조작, 은폐 의혹 엄정수사할 것"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11년 12월 숨진 김모(당시 20살) 일병의 조의금 횡령 사건을 공개한 지난 2월 27일, 국방부는 바로 다음날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엄정수사를 약속했다.

김민석 대변인은 당시 정례브리핑을 통해 "(김관진 국방장관이) 엄중수사를 지시했다"며 "수사 결과를 보고, 거기에 맞게 절차에 따라서 규정에 맞춰서 처리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 장관은 조의금 횡령 사건뿐만 아니라 가혹행위는 없었고 김 일병이 입대 전부터 앓고 있던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엉터리 수사결과에 대해서도 조사를 지시했다.

김 대변인은 '초동수사 과정에서 사건을 조작하거나, 혹은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 권익위의 조사결과인데 그런 부분도 집중적으로 보는 것인가?'라는 질의에 "그런 부분까지도 수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폐나 축소 수사를 했으면, 그것은 공소시효를 떠나서 바로 잡아야 하는 사안"이라며 "군 내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되면 군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전역병사의 양심선언 "입막음 강요 있었다"

김 일병 사망사건을 수사한 군 헌병대는 "고인이 군병원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우울증이 악화돼 자살한 것"이라는 수사결과를 유족에게 전달했고 이 때문에 유족들은 부검조차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장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2012년 11월 김 일병과 함께 근무한 전역병사 김모 씨가 한 인터넷 게시판에 '나는 살인을 방관했고, 나 또한 살인자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김 일병의 사망 뒤 사건수사 과정에서 부대 간부들의 입막음 강요, 군 헌병대의 왜곡된 수사 등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김 일병의 아버지 김모 씨는 아들의 사망원인을 밝혀달라고 귄익위에 민원을 제기했고 권익위는 재조사 끝에 "선임병의 폭언,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가혹행위, 중대 간부들의 복약관리 및 신상관리 소홀로 김 일병이 여러차례 자해를 시도한 끝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권익위는 특히 당시 여단장이었던 A 대령이 횡령한 조의금으로 수사를 담당한 헌병대에 격려금 20만 원을 지급한 것과 관련해서는 "'제식구 감싸기식 부실수사'라는 오해와 수사에 대한 불신을 유발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밝혔다.

당시 육군 헌병실장 역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에게 격려금을 받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내용의 지휘서신을 내려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헌병대의 엉터리 수사결과와 그로 인한 사건조작, 은폐 가능성이 드러난 것으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에 대한 엄정수사를 지시한 만큼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 말로만 '엄정수사'…"사망원인 재수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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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당 사건이 공개된 지 8개월이 훌쩍 지난 최근까지 국방부와 육군 소속 군 수사기관은 왜 김 일병 사망사건 수사결과가 왜곡됐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 관계자는 사건 재수사와 관련한 CBS 노컷뉴스의 질의에 "조의금 횡령 사건과 관련해서만 수사를 했고 당시 사망원인과 관련한 헌병대 수사결과에 대해서는 별도로 재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시 권익위 조사에서 가혹행위와 부대 간부들의 관리미흡 등의 사실이 드러나 고인에 대해 '순직' 처리를 한만큼 재수사를 할 실익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육군은 국방장관의 엄정수사 지시 직후 증거인멸과 관련한 수사를 위해 양심고백을 한 전역병사 김 씨를 불러 진술을 받았고 '입막음'을 강요한 혐의가 있는 중대장 전모 대위 역시 조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자 육군은 대질심문을 요구했고 김 씨가 이를 거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아 처음부터 '엄정수사'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권익위 재조사 결과는 물론 지난해 김 일병 아버지가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결과를 통해 당시 헌병대의 부실수사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에 대해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장관 지시도 '무시', 또 한 번의 은폐 시도

그 결과 김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부대 간부들의 입막음 강요와 A 대령이 헌병대에 격려금을 건넨 이유뿐만 아니라 사망시간 조작, 헌병대의 부대원 진술 왜곡 등과 관련한 숱한 의혹의 진실은 전혀 밝혀지지 못하고 있고 이와 관련해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전역 병사들은 김 일병을 발견한 시간이 수사기록에 나온 것보다 1시간 이상 차이가 나고 이는 구급차 도착 지연 등 초동대응 실패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 그리고 사건 당시 자신들의 진술 내용이 수사결과에는 왜곡됐다는 의혹 등을 제기한 바 있다.

김 일병 아버지 김 씨는 "아들의 사망원인과 관련해 왜 수사결과가 그렇게 됐는지 그동안 군에서 제대로 된 설명이 일절 없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조의금 횡령 사건으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국방장관까지 나서 엄정수사를 지시했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여론의 관심이 멀어지자 또 한 번의 은폐를 시도한 것.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당시 육군 중앙수사단이 사망사건 조작·은폐 의혹과 관련해서도 수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장관까지 나서 엄정수사를 지시했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기다 김 실장 역시 대변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엄정수사를 약속해 놓고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거짓 약속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조의금 횡령 수사도 부실, 여단장 '무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엉터리 사망원인 수사에 대해서는 손도 안 댄 군은 조의금 횡령 사건과 관련해서도 해당 부대장이 무죄 판결을 받아 부실수사와 꼬리자르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10일 김 일병의 조의금을 헌병대에 격려금으로 주는 등 조의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A 대령에게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인사행정 부사관이었던 B 상사가 독단적으로 조의금을 횡령해 일부는 헌병대와 기무대에 격려금으로 주도록 A 대령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부대 회식비로 썼다는 것이 군사법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군 지휘체계의 특징상 부사관이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이라면 모를까 행정비용으로 쓰기 위해 지휘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조의금을 횡령했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군 관계자는 "부사관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죽은 장병의 조의금을 횡령해 부대 운영비에 쓰겠냐"라며 "부대장이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인데 꼬리자르기나 부실수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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