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분야에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쌤앤파커스는 지난 9월 고위 간부가 직원을 성추행한 사건이 불거져 물의를 빚었다.
2012년 9월 14일, 1년 5개월간 수습사원으로 근무하던 피해자는 가해자 A 상무와 정규직 전환을 위한 최종 면담 형식의 술자리를 가졌고, 가해자는 술에 취한 피해자를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해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2013년 7월, 사내에 가해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과 제2의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 사직했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고, 이후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재정신청 역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지난 4일 기각됐다.
◈ "성폭력 피해 사실 밝혔지만 오히려 내부 고발자로 몰려"
전국언론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의 재정신청 기각은 직장 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는 서울고등법원과 성폭력 가해자 편에 서서 진술서를 써준 쌤앤파커스 박시형 대표의 합작품"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가해자가 사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고, 평소 회식 자리에서도 술에 취해 여직원들을 껴안고 손을 잡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직원들의 여러 진술이 있었다"며 "특히 박시형 대표의 기만적 행동이 법원의 잘못된 판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진희 전국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분회장은 "박시형 대표는 지난 9월 17일 이 사건이 공론화되자 며칠 후인 22일 '피해자께 사죄한다'며 납작 엎드려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재정신청 과정에서는 '가해자는 인사권이 전혀 없고,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며 상반된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밝혔지만 오히려 내부 고발자가 되어 상사들로부터 '너 때문에 회사 망하게 생겼다' '가해자의 사무실을 청소해라'라는 비난과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쫓기듯 회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출판노동자가 부조리한 권력을 계속 눈 감아 준다면 조직의 치부를 숨기는데 급급했던 박시형 대표의 동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쌤앤파커스 측의 적반하장…"당신들이 봤어?"
쌤앤파커스 사내 성폭력 사건의 핵심에는 출판사 노사 간 시스템 부재와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있다.
언론노조 강성남 위원장은 "정규직을 빌미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부당하고 조직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내서 명성을 얻으면 소수 경영진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이들이 절대권력을 이용해 고용과 해고 등을 좌지우지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구조적 비리를 개선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며 출판노동자의 연대와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피해자는 "재정신청은 기각됐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나보다 더한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불합리한 제도나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숨은 피해자를 떠올리며 끝까지 투쟁하겠다. 결과에 상관 없이 의미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언론노조는 "박시형 대표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공개 사과하고, 사내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기자회견 후 강성남 위원장,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김수경 여성국장, 박진희 서울경기지역출판분회장 등으로 구성된 언론노조 대표단과 피해자는 쌤앤파커스 사옥을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박시형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부재 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쌤앤파커스 편집자로 일하는 한 남성 직원이 피해자와 언론노조 대표단에게 "당신들이 봤어?" 등의 폭언을 해 빈축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