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5차전을 이기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삼성 류중일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8회말 무사 만루 찬스에서 아무런 작전을 내지 않았고, 결국 1점도 못 내면서 자칫 질 뻔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9회말 끝내기 역전 적시타가 터졌지만, 졌으면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덮어쓸 뻔 했다.
그렇다면 8회말 무사 만루 찬스는 어떻게 무산됐을까.
먼저 8회말 채태인이 안타를 치고 나갔고, 최형우는 볼넷을 골랐다. 이어 이승엽은 조상우의 공에 맞은 뒤 홈런만큼 기뻐했다. 이렇게 1점이 절실한 상황에서 무사 만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다음 차례는 박석민.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단 1안타에 그친 박석민은 5차전에서 타순이 6번으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무사 만루에서는 첫 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첫 타자가 아무런 성과 없이 물러날 경우 두 번째 타자는 병살타라는 부담감이 생긴다. 하지만 박석민이 유격수 플라이로 물러났고, 이어 박해민, 이흥련이 연이어 아웃됐다.
류중일 감독은 "8회 무사 만루에 점수를 못 냈는데 그 부분이 참 아쉽다. 대타 카드를 썼어야 했다. 졌으면 감독 책임"이라면서 "무사 만루는 첫 타자가 잘 해야 한다. 첫 타자가 병살타를 쳐도 1점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삼진이나 내야플라이가 나오면 다음 타자에게도 영향이 간다"고 말했다.
박석민은 삼성의 중심 타자 중 하나다. 그런데 1사 만루에서 타석에 선 박해민은 왼손 약지 인대 손상으로 100% 타격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2사 만루에 나온 이흥련도 올해 타율 2할2푼7리다. 그럼에도 대타를 안 쓴 이유는 무엇일까.
류중일 감독은 "박석민은 대타를 생각안 했고, 박해민 차례에 대타를 생각했다. 그런데 발이 빠르니 최소 병살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구가 1루로 가는 최악의 상황이 됐다"면서 "지나고 나서 보니 김태완도, 우동균도 있었는데 그게 아쉽다. 그래서 야구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흥련 타석 때 대타를 쓰지 못한 이유는 포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수를 3명이나 포함시켰다. 하지만 선발로 이지영이 나왔고, 진갑용은 7회말 대타로 나와 안타를 친 뒤 대주자로 교체됐다. 1점 차에서 마지막 포수를 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삼성은 9회말 짜릿한 끝내기로 역전승을 거뒀다. 류중일 감독으로서는 기분 좋게 잊을 수 있는 8회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