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팀은 4승3패 극적 역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승엽은 웃고만 있을 수 없었다. KS 7경기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 1타점 1득점의 극심한 부진을 보였던 까닭이다. 삼성이 4차전까지 1승3패로 고전한 것도 승부처 이승엽의 침묵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7차전 동점 적시타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이승엽은 7차전 뒤 "야구하면서 이번처럼 걱정해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베이징올림픽도 힘들었지만 이번이 더 힘들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이어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기회,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다짐했다"면서 "여기서 못 치면 '이승엽은 끝'이라고 마음 먹었다"고 절실함을 드러냈다.
더불어 2014시즌에 대한 뼈를 깎는 각오도 다졌다. 이승엽 "내년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이승엽으로 돌아오고 싶다"면서 "열심히 준비해서 제 이름을 찾도록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2013년 정규리그에서도 타율 2할5푼3리 13홈런 69타점에 머문 부진을 씻겠다는 의지였다.
▲"프로에서 2등은 알아주지 않잖아요?"
그 무서운 다짐 이후 1년여가 지난 2014년 11월 5일 대구구장. 이승엽의 절치부심은 결실을 맺었다. 정규리그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린 데 이어 KS에서도 모처럼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승엽은 넥센과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KS 2차전에서 사실상 승부를 가르는 한방을 뽑아냈다. 3-0으로 앞선 3회 2사 2사 2루에서 상대 선발 헨리 소사로부터 쐐기 2점 홈런을 날렸다. 시속 147km 초구 직구를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15m짜리 아치였다.
하지만 이승엽의 절치부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기 후 "지난해 KS 7차전 다짐을 이뤘느냐"는 질문에 이승엽은 "부족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시리즈 다 끝나야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면서 "프로에서 2등은 알아주지 않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정규리그 성적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승엽은 일단 "정규리그는 100% 만족한다"면서 "목표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전제했다. 이승엽은 올해 타율 3할8리 32홈런(4위) 101타점(5위)을 올렸다. 역대 최고령 30홈런, 100타점이었다.
▲"올해 내 점수는 90점, 10점은 KS 우승으로"
KS 우승으로 부활의 화룡점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승엽은 "나의 올 시즌 전체에 점수를 매긴다면 90점 정도"라면서 "나머지 10점은 남은 KS에서 3승을 거두면 채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날도 이승엽은 홈런이 나오고 팀이 이겼지만 불만도 적잖았다. 나머지 타석에서 삼진을 3개나 당하며 5타수 1안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팀 승리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 좋다"면서도 "홈런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분명 고전했다"고 자책했다.
이어 "긴장 풀 만한 그런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면서 "내일 하루 훈련해서 3차전부터는 오늘, 어제와는 다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팀 승리에 보탬이 되게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38살 나이에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확인한 이승엽. 과연 1년 전 자신과 약속을 지켜내 2014년을 뿌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