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이 커지는 만큼 자연스럽게 버진 아일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말로 ‘처녀섬’이라고 불리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는 어떤 섬일까?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Robert Louis Stevenson)가 1883년 ‘보물섬(Treasure Island)’을 발표했을 때, 소설 속의 섬이 실존하는 곳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카리브 해 외딴 곳에 위치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VI : British Virgin Island)는 바로 이 소설 ‘보물섬’의 배경 중 하나로 널리 거론된 장소다. 실제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2편의 부제 ‘망자의 함(Dead Man’s Chest)은 버진 아일랜드에 속한 작은 섬의 이름이다.
버진 아일랜드는 푸에르토리코 동쪽 끝에 있는 약 80개의 작은 섬들을 총칭한다. 미국령과 영국령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카리브 해 외딴 곳에 위치한 작은 섬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총면적은 353㎢이며, 인구는 지난 해 기준 10만 9,574명이다.
몇 백 년 전 해적과 약탈자들의 은신처였던 이곳은 우연의 일치인지 21세기에 들어서 현대판 보물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영국 자치령의 작은 섬이 이번엔 조세 회피처(Tax Haven)가 되어 해적 대신 세계 각지의 부자들이 몰려와 섬에 돈을 파묻은 것.
버진 아일랜드가 이렇게 조세 회피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본국인 영국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 자치령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금이 낮고 규제가 매우 느슨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세계 각지의 부호들은 이런 장점을 악용해 재산을 은닉하고 조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버진 아일랜드를 택한 것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 작은 섬에는 놀랍게도 수 만개의 기업과 많은 수의 금융 기관들이 존재한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따르면 5층밖에 되지 않는 빌딩 한 채에 18000개 기업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물론 이 회사는 그저 ‘페이퍼 컴퍼니(서류 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회사)’일 뿐이고, 그 안을 살펴보면 정당한 거래가 불가능한 검은 돈 그리고 떳떳하지 못한 거래내역들로 가득하다.
수많은 조세 회피처(Tax Haven) 중 ‘버진 아일랜드’가 이렇게 주목받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다른 스캔들을 쫓고 있던 저널리스트 제러드 라일(Gerard Ryle)이 입수한 260GB에 달하는 데이터 속에 버진 아일랜드 유령회사 21500개의 실소유주와 거래 내역이 담겨져 있었던 것.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15개월에 걸쳐 이 자료를 분석했고 결국 지난 3월 버진 아일랜드의 역외회사(offshore company)들의 실소유주와 예금주들의 리스트가 발표돼 국제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지난 4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표된 버진 아이랜드의 ‘VIP’들은 그루지아 이바니슈빌리 총리, 러시아의 이고리 슈발로프 제1 부총리의 부인 올가 슈발로프, 탁신 전 태국 총리의 전 부인 포자만 나폼팻,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딸 이멜다 마르코스, 몽골의 국회 부의장 바야르척트 상가자브 등이 있다.
한편 24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제러드 라일 기자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남미 카리브해에 있는 조세피난처 버진 아일랜드에 계좌를 보유한 사람 중 한국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며 "주소로 인물을 뽑아보면 일부는 동일 인물의 중복일 수 있지만 70명 정도의 관련자가 나온다"고 밝혔다. 한국인에 대한 계좌는 현재도 분석 중이며 BVI에 계좌를 보유한 한국인의 명단 공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