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다웠던 마지막, 허재도 예우했다

국보급 센터, 마지막 날까지 진정성있는 승부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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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아, 버티지 말고 힘들면 넘어져라"

감독과 선수로 한솥밥을 먹었던 6년 전, 허재 전주 KCC 감독이 서장훈(39·부산 KT)에게 건넨 조언이다.

서장훈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서장훈은 꼼수를 부릴 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상대가 반칙성 수비를 해도 서장훈은 웬만해서는 넘어지지 않고 우직하게 버틴다. 헐리웃 액션은 아예 할 줄 모른다. 승부에 임하는 자세는 늘 바르고 정직했다.


코트나 사회나 마찬가지다. 정직하게 승부하는 것이 항상 인정받거나 대우받지는 못한다. 종종 꼼수도 부리고 힘든 척, 아픈 척도 하지 않나. 서장훈은 성격상 그게 안된다. 그래서 가끔 미련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손짓에 넘어지며 심판을 바라보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나. 서장훈은 그걸 못한다.

서장훈은 한동안 코트에서 가장 막기 힘든 선수였다. 항상 수비가 집중됐다. 그를 막아야 하는 선수는 아무래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장훈이 조금이라도 엄살을 부렸다면 그가 당한 파울수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장훈은 버텼다. 그리고 심판을 바라봤다. 왜 불어주지 않냐고 따졌다. 서장훈의 우직함은 상대의 거친 플레이도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피해를 볼 때가 많았다.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에 안티 팬도 늘어났다.

이에 대해 서장훈은 "내가 갖고있는 농구 철학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았다. 농구장은 버라이어티 쇼를 하는 무대가 아니다. 치열하게 승부를 가리는 게 최고의 팬 서비스라고 생각해왔다. 그 와중에 승부욕이 과했던 모습이 보기 불편했다면 팬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진정성있게 최선을 다해서 이기려고 했던 마음은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부산사직체육관에서 KT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올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나는 '국보급 센터'의 은퇴경기였다. 상대는 한때 서장훈이 몸담았던 KCC.

누구에게 서장훈에 대한 수비를 맡기겠냐는 질문에 허재 감독은 "노승준에게 맡긴다. 마지막까지 제대로 해야지"라며 웃었다. 신인 포워드 노승준은 외국인선수를 제외하고 팀 내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수비수다.

서장훈이 마지막까지 진정성있는 승부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허재 감독의 배려심이 느껴졌다. 서장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허재 감독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후배를 예우한 것이다.

서장훈의 동갑내기 친구인 추승균 KCC 코치는 1년 전 이맘 때 코트를 떠났다. 경기 전 만난 추승균 코치는 은퇴 당시를 떠올리며 "장훈이가 오늘 참 기분이 묘할거야"라며 웃었다.

서장훈은 경기 전 "요즘 혼자 있으면 자꾸 감상에 젖게 된다. 최대한 담담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서장훈의 부친은 이날 체육관을 찾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도저히 아들의 마지막 경기를 담담하게 지켜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장훈은 오죽했을까. 경기 전 기자회견 때나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마음 속으로 울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경기 개시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한마리의 사자같은 눈빛으로 돌아왔다. 블록을 당하기도, 거친 반칙을 당하기도 했다. 서장훈은 상대의 도전을 즐겼다. 이를 악물고 뛰었다.

서장훈의 마지막 슛은 그의 농구 인생을 대변하듯 너무나 드라마틱했다. 2점차로 앞선 종료 11초 전, 골밑슛에 이은 추가 자유투까지 성공시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올시즌 개인 최다인 33득점째. 코트는 서장훈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결국 KT는 84-79로 이겼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장훈은 서장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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