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년동안 서민들의 주전부리였던 이 붕어빵이 최근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몸값이 껑충 뛰어버린 것이다. 밀가루 값이 거의 두배로 뛰면서 제 몸의 70%가 밀가루로 만들어진 붕어빵도 덩달아 몸값이 올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1천원에 5개 하던 것이 올들어 1천원에 2개 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흔하던 덤은 당연히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넉넉한 양을 유지하는 붕어빵 가게가 아직 남아있다. 그것도 1천원에 4개, 5개도 아니고 무려 10개!
서울 지하철 1호선 회기역 앞에서 경희대 쪽으로 가는 길에서 4년째 붕어빵 장사를 하는 노점상 한용희(47)씨와 아내 김영임(46)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이들이 붕어빵 장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부부는 ''얼굴은 안나오게 촬영한다.''는 조건으로 결국 취재에 응했다.
"붕어빵 1천원에 10개, 남는 게 있을까?"
하지만 양으로 따지면 월등한 경쟁력을 갖는다. 똑같은 가격에 비슷한 맛, 하지만 두세배의 양이라면 상당한 경쟁력 아닌가?
"이렇게 팔아도 남는 게 있나요?"
짐짓 걱정스럽다는 기자의 질문에 남편 한씨의 대답이 돌아온다.
"남는 게 있으니까 장사하죠."
재차 이어지는 질문.
"진짜, 진짜로 남는 게 있나요?"
이같은 걱정은 한씨 부부의 붕어빵을 사가는 손님들 대부분이 느끼는 바다. 어느새 한씨 부부 노점의 단골이 됐다는 주부 전옥림(43 ·동대문구 휘경동) 씨는 "아이들이 부담없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며 "2천원에 붕어 20마리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2천원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박민우(23·경희대) 씨도 "이 곳 붕어빵은 양이 많아 식사대용으로 그만"이라며 웃는다.
손님 10명 가운데 5명은 "가격을 올려도 괜찮지 않느냐"고 오히려 한씨에게 ''가격인상''을 권장하기도 한다. 또 너무 싸서 사먹기 미안하다는 반응도 많다. 하지만 한 씨는 "망해도 내가 망하는 거고 성공해도 내가 성공하는 거니까 단골손님만 늘면 된다"며 우직하게 ''박리다매의 경영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고단한 서울생활, 그래도 꾸준히 빵을 굽는다."노릇하게 구워져 바삭해진 붕어빵이 부인 김 씨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곡차곡 선반 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붕어빵 굽기는 김 씨 담당이다. 몸이 조금 불편한 한 씨는 옆에서 호두과자를 굽는다. 옛날에는 옆에서 고구마도 팔고, 과일장사도 했지만 구청 단속 때문에 노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 씨는 "지금까지 밀린 벌금만 150만원"이라면서도 "그래도 꾸준히 빵만 굽는다."고 한다.
세 아이의 든든한 부모인 한 씨와 김 씨는 11년 전 상경했다. 이들 부부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에는 많이 힘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 씨가 "한 번 실패를 해봐서인지 이젠 많이 신중해졌다"고 운을 떼자 김 씨가 "그때 얘기는 그만 하라."며 눈치를 준다.
"가능하면 가게를 얻어서 장사를 하고 싶지만 그건 욕심인 것 같다."면서도 "뭘 하든지 (사정이) 계속 어렵다."고 김씨는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내 한씨의 얼굴이 펴지며 "지금까지 4곳이나 (붕어빵)창업지도를 해줬다"고 흐뭇해 한다. 그러면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힘들 때도 있지만 하고 싶은 사람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부인 김 씨는 하루에 평균 2천개씩 붕어빵을 굽는다. 취재 내내 말없이 붕어빵을 굽던 김 씨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부탁했다. 김 씨는 가만히 미소짓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김 씨의 꿈도 참 소박하다.
''얍삽한'' 시대를 향한 우직한 충고
한 씨 부부의 붕어빵이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가격이 싸서, 양이 많아서만은 아닐 게다. 물가가 오를 기미만 보이면 재빨리 가격부터 올리고 보는 ''얍삽한'' 이 시대에 ''옛날 그 가격 그대로'' 장사를 하는 이들 부부의 우직함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드는 게 아닐까.
붕어빵 10마리의 온기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훈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