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 등 복지 공약에 대한 말 바꾸기 논란이 인 데 이어 경찰청장 임기 보장, 청와대 검찰 파견 제한 등의 인사 관련 공약도 속속 깨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신중한 언행과 대선 과정에서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공언 덕분에 '원칙론자'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런 이미지도 빠르게 퇴색하고 있다.
15일 갑작스럽게 바뀐 경찰청장이 인사 원칙이 허물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이 외압이 흔들리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현재 2년인 경찰청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이 때문에 경찰청장은 유임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코드 인사'에 밀려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전날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사가 빠지면서 막판에 인선이 뒤바뀌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지만, 결국은 경찰청장을 바꾸기 위한 절차를 밟느라 인선이 늦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한 경찰청장 내정자(부산청장)는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법적 임기가 1년 남은 김기용 경찰청장을 교체한 것은 주요 권력기관인 경찰의 장악력을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로 "정치 눈치보기나 줄서기 현상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김기용 경찰청장의 인사청문회를 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사항이 또 하나 무너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중립성을 위해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제한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도 유야무야됐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논란 끝에 임명된 이중희 민정비서관(46. 사법연수원 23기) 외에도 이창수(42.30기), 김우석(39), 홍성원(36.이상 31기) 검사가 최근 청와대행을 이유로 법무부에 사직서를 냈다.
이를 놓고 청와대에서 파견 검사를 통해 특정 수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민정비서관을 지낸 한 정치인은 인사 원칙이 퇴보한 데 대해 "핵심 법무행정은 검사가 도맡아 왔고, 대통령 측근 비리 등에 대한 사정에도 검찰이 가장 능력이 뛰어난 게 사실"이라면서 "때문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에 검사들을 파견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수사와 관련해 특명 하달 등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컨트롤 할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지난 정권의 낙하산 인사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장 교체를 예고한 것에 대해서도 "다른 '낙하산'으로 교체하는 것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국정철학 이해"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코드 인사'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복지 공약 역시 크게 후퇴하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것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한 100% 국가 보장' 공약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료 등 3대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에 적용시키겠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직 인수위는 "비급여 항목은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다"고 발을 뺐다.
기초연금 공약도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에서 '국민연금 가입 여부.기간에 따른 차등지급'으로 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원칙과 약속이 깨진 것은 공약이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공약의 실천 방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생략되다보니 여러 가지 제약에 발목이 잡혔다는 것.
복지 공약의 후퇴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박 대통령은 재원확보 방안으로 증세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제시했지만, 지하경제가 성매매 등 범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실효를 거두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등의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해 과대포장된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의 나라 살림살이로 당장 못하는 공약은 단계적으로 시간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