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이 국가미래 흔든다, 스웨덴의 뚝심 배우자

[국민연금 이대로 안된다③]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와 불만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기초연금과 맞물리면서 국민연금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5년마다 돌아오는 국민연금 추계(推計)의 해이다. 연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는 그대로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해외 사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국내 전문가들을 심층 인터뷰해 국민연금의 앞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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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해 '국민행복연금'을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이 술렁거리고 있다. 세대간, 계층간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연금 논쟁이 신호탄을 울렸다.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 5년마다 실시되는 국민연금 추계 때마다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지고, 재정 건정성이 악화되는 것도 바로 전광석화로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 때문이다. 연금 문제가 고령화와 함께 바짝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국가들에 눈을 돌려 보면, 연금 개혁에 일찍 눈을 뜨고 꾸준히 진행한 나라는 다소 안정적인 경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연금 개혁에 실패하면서 복지 지출을 조절하지 못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장기 경제 침체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리스처럼 파탄에 이른 나라도 있다.

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곧 그 국가의 미래 경제를 좌우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경계해야 할까?

◈ 스웨덴, 여야 초월해 10년간 뚝심있는 연금개혁

복지 국가의 표본으로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은 90년대부터 연금 개혁을 일찌감치 서둘러왔다.

가장 먼저 연금 개혁에 손을 댄 국가는 바로 스웨덴이다. 90년대 초반에 경제위기를 겪었던 스웨덴은 무려 10년에 걸친 연금 논쟁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다.

스웨덴은 90년대 초반까지 전 노인을 대상으로 일정액을 평등하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소득에 비례한 부가연금(ATP) 제도로 나뉘어 운영돼 왔다. 기초노령연금-국민연금으로 이원화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노령인구의 급증과 연기금 고갈 문제가 불거지면서 90년대 초반부터 열띤 사회적 논쟁이 시작된다.

보수진영의 연립정부 주도 하에 연금 개혁이 시작되자 당시 야당이었던 사민당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연금정책을 포기하며 암묵적으로 개혁에 동조했다.

이에 스웨덴은 수년간의 논쟁 끝에 기초연금을 과감히 폐지하고 소득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재정 안정화에 성공한다.

현재는 공적 부조 성격의 최저보증연금(Guarantee Pension: GP)과 소득비례연금(Income Pension: IP), 완전적립식 개인연금(Premium Pension: PP)으로 삼원화돼 운영되고 있다.

기초연금 폐지로 보편주의가 약화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구제도가 안고 있던 모순이 사라지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은 혜택이 늘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세계 국가 경쟁력 1위인 핀란드 역시 90년대 초반 연금 제도의 기본 틀을 크게 바꿨다.

보편적 기초연금 제도를 운영했던 핀란드는 이를 유명무실화 시키고, 저소득층을 중점 지원하는 방향으로 노후 소득보장제도를 변경하고 있다. 대신 최저소득보장제도와 주택수당제도 등을 강화했다.

노르웨이는 2011년 부터 1963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서는 기초연금 제도를 폐지하고, 저소득층 보호 차원에서 공공부조 성격의 최저보증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이처럼 이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은 여야간 소모적인 정치 논쟁을 자제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끈질기게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연금 개혁에 성공했다.

특히 애매한 보편주의 대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최저연금제도로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펴 거시적으로 인구 구조를 개선해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북유럽식 복지 국가의 배경에 의외로 과감한 연금 개혁이 있었던 것이다.


중미권에서는 캐나다 연금이 선진적으로 꼽힌다. 캐나다는 지난 97년 국민연금, CPP(Canada Pension Plan)개혁을 단행해서 분담금을 다소 인상하고, 유지 관리 비용을 절감시켰다. 또한 2014년까지 지급할 연금의 20%, 2075년까지 30%를 축적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기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연기금 수익률도 11%를 웃도는 등 높은 운용력을 자랑한다.

◈ 그리스, 스페인 등 연금 부담이 국가경제에 발목, 미래세대 투자 소홀

반면 유럽발 금융위기를 불러온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부유럽 국가들은 부담 대비 높은 연금 지출로 인해 정부 재정이 불안정해졌다.

스페인과 그리스는 과도한 연금으로 파산 위기에 직면한 대표적인 나라이다. 스페인 국민들은 은퇴하면 직전 15년 평균급여의 85%를 연금으로 받았고, 그리스는 재직 시 월급의 95%를 받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급여율이 높아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됐지만 연금 개혁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순탄치 않았다.

스페인은 높은 급여율에도 불구하고 표를 의식해서인지 지난해 오히려 연금지급액을 1%p 늘렸다.

그리스는 재정위기 이후 지속적인 연금 삭감을 시도했지만 대규모 파업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탈리아는 1992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친 연금 개혁을 시도했지만 겉핥기에 그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연금 수급 연령을 70세까지 늦추는 극단적인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연금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의 국민연금 성격인 '후생연금'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율과 평균 수명 추이를 반영해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했지만 기초연금의 경우 재정 공동화가 심해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저출산, 보육 등 미래 세대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전체 복지지출에서 연금 등 고령예산 비중은 47%에 달한 반면 미래에 대한 투자인 보육 등 가족예산은 5%에 불과했다. 전체 복지예산의 12%를 아동수당 육아휴직 수당 등에 투입한 스웨덴과 대조적이다.

◈ 연금 개혁 늦추면 더 큰 혼란 초래, 사회적 대토론 시작하자

우리나라의 연금 역사는 짧지만 인구 구조가 워낙 빠르게 급변하고 있어 해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해외 선진국들은 수십년 동안 연금의 혜택을 누린 후에 문제가 불거졌지만 25년 역사의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수혜를 받기도 전에 기금 고갈의 문제가 닥치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아 노인 인구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악이어서 빈곤 해소와 연금 개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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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해외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일부 반발을 딛고서라도 과감하게 연금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 빈곤율은 낮추고 연금의 재정 건전성은 높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특히 스웨덴처럼 여야가 정쟁(政爭)을 떠나 거시적인 안목으로 타협해야 개혁을 이끌 수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연금연구센터장은 "연금을 손보면 후세대가 무조건 손해본다는 등의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만큼, 개혁의 방향을 잘 설정하고 그 필요성을 설득해 지금이라도 사회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금 문제의 근본적인 치유책은 저출산 완화 등 미래세대 투자를 통한 인구구조의 개선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연금 개혁이다"며 "연금 자체에 대한 제도 개선 뿐 아니라 출산 및 보육 정책과 병행해서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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