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法 "국가는 도박 조장하면서 개인은 안된다고?"

사행 도박 조장하는 국가가 피고인 단죄 정의에 어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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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저항이 없어 ‘고통 없는 세금’으로도 불리는 복권·마권 판매를 정부가 늘려가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불법 도박장 개장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에 대해 "도박 개장행위와 관련해 국가가 이미 더 거악을 범하고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해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형주 판사는 불법 스포츠 도박장 개설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최모(34)씨에 대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7억908만원과 사회봉사 400시간,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의 도박개장 행위가 사회적으로 일정 정도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면이 있더라도 실질적인 도박개장행위와 관련해 이미 더 거악을 범하고 있는 국가가 피고인을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이어 "피고인의 도박개장죄의 처벌 필요성과 피고인이 범죄로 취득한 수익의 전부를 추징당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실형에 처하는 것은 과중하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장기간의 사회봉사를 부과해 피고인에게 건전한 사회구성원이 되는 기회를 부여한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세수확보'위해 국가가 앞장서 사행산업 부추기는 현실

이 판사는 판결에 앞서 세수확보를 위해 국가 주도로 사행산업의 규모를 키우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판사는 "사행성 있는 도박을 규제해 건전한 근로 풍토를 조성할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면서도 "이러한 책무는 그 누구보다 국가가 가장 앞서서 실천하고서 국민에게 국가가 설정한 기준을 따를 것으로 요구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각종 공적 용도를 목적으로 한 세수와 특별기금을 마련한다는 구실아래 형법상 도박죄 처벌조항을 무력화시키는 특별법을 만들었다"며 "국가가 앞장서서 여러 복권사업과 경마·경륜·내국인 카지노 등 수많은 사행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에 대한 투자라는 미명 아래 합법적으로 조성된 각종 주식과 선물․옵션 시장 또한 부정한 시세 조작에 대한 규제 방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투기와 사기․도박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 등이 시행하는 사행 사업 등의 경우 사행성 행위로 변질되지 않고 건전한 근로 풍토를 저해함 없이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세수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국가 주도의 사행 산업의 규모를 최근 들어 더 키우려 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빚어진 부작용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조사와 분석, 법적인 대응까지 요구 된다"며 "국가가 실질적인 도박개장행위를 하면서 사인의 도박개장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2009년 8월 중국서버에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뒤 지난 2011년 7월까지 운영하면서 30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최씨와 공범으로 기소돼 축구 승부조작 혐의까지 더해진 김모(33)씨는 지난해 6월 1심에서 징역3년6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국민체육진흥법에서 체육진흥투표권의 발행 주체와 절차를 법률로 정한 이유는 자칫하면 사행성 행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인터넷 도박 사이트 운영으로 인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점과 승부조작을 통해 배금주의를 팽배하게 할 우려가 상당한 점을 감안하면 실형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한편 사행산업통계정보포털에 따르면 2000년 6조2761억원이던 사행산업 매출액은 11년만인 2011년 18조2629억원으로 3배정도 늘었고, 매출액은 2000년 2조1149억원에서 2011년 7조6012억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의와 농림수산식품부․마사회 등은 각각 올해 복권 매출 총량 한도를 지난해보다 3198억원 더 늘리고, 공원형 장외발매장을 32곳 추가로 짓겠다며 올해 초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에 요청했지만 사감위는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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