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에서 이른바 '기증 전도사'로 불리는 장부순(70)씨. 그녀는 지난 2011년 1월만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프로젝트 작업을 하던 아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건 그해 1월 15일 토요일 아침 9시쯤이었다.
"할머니, 삼촌이 쓰러졌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손녀딸의 다급한 외침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황급히 119에 신고해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쓰러진지 이틀째 되던 날 아들은 뇌사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고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을 무렵,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으로부터 뇌사자 장기기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꺼져가는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가 마음 속 깊이 울려퍼졌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수술대 위에서 아들을 죽게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한 줌의 재로 날려보낼 생각을 하니 너무 허무하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녀는 뇌사자가 된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기증을 한다고 동의하고나서 빌었어요. '우리아들 수술할 때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고요. 요즘은 아들이 보고싶을 때마다 가톨릭병원에도 가고 서울대병원에도 가고 해요. 아들의 체취가 있는 곳이니까요. 저도 언젠가 죽게되면 장기 기증을 할거에요"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 장기 기증을 실천하며 생명나눔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뇌출혈 등으로 인해 뇌사 상태에 빠진 이들의 장기기증이 지난해 처음으로 400명을 넘어서며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13일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기증을 하고 숨진 뇌사자가 409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1년의 368명에 비해 11% 증가한 것이다.
장기 이식은 신장이 768건, 각막 396건, 간장 363건, 심장 107건, 폐 37건, 췌장 34건 등 총 1,709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는 생후 4개월의 뇌사 영아가 생후 11개월 영아와 56세 여성에게 심장과 신장을 각각 기증한 국내 최연소 기증 기록 등도 포함됐다.
특히, 2008년 권투경기 중 뇌사 상태에 빠진 최요삼 선수와 이듬해 김수환 추기경의 '생명나눔'은 장기기증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여기에 기증을 한 이들이 기증전도사로 나서는 경우도 있어 그동안 다소 부정적이던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에도 한몫하고 있다.
장기이식센터 관계자는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 지난해 처음으로 400명을 넘어설 것 같다"며 "고인과 가족의 값진 결정이 생명나눔의 숭고한 정신을 더 널리 알리는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