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감독의 든든한 파트너 김경희PD "문성근이 현장통제, 매니저는 제작부원"

홍상수 감독 말 한마디에 유학도 접어, '하하하'로 PD로서 첫 작품

김경희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을 대표하는 홍상수 감독. 그의 작품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과 작품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독특한 작품세계 만큼이나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홍상수 감독의 곁을 꾸준히 지켜온 이가 있다. 바로 김경희 PD다. 영화 '밤과 낮'으로 지난 2007년 홍 감독과 처음 연을 맺은 김 PD는 '하하하'로 PD 데뷔한 뒤 지금까지 홍 감독과 함께 하고 있다. 홍 감독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때론 엄마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김 PD는 "감독님과 일하는걸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고,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우리 현장이 곧 제 꿈을 이뤄주는 곳"이라고 밝혔다. 너무나도 유명한 홍 감독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김경희 PD의 인생 스토리를 노컷뉴스가 들어봤다.

■홍상수 '영화'와의 첫 만남 

김 PD를 영화로 이끈 건 비디오 가게다. 1994년 부산외국어대학교 1학년 재학 당시 우연히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그 당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김 PD는 순수한 팬으로서 홍상수 영화에 푹 빠져들게 됐다. 이후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부산 카톨릭센터에서 독립영화 16mm 워크숍에서 참여한 적이 있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제작부를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더라. 영화가 좋으니까 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선뜻 제작부를 했던 것같다. 제작부를 하면서 굳이 감독이 아니어도 현장에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

■홍상수 '감독'과의 첫 만남

현장으로 가기에 앞서 배움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어를 전공했던 김 PD는 2001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현장을 배우고 싶어 떠났던 유학에서 오히려 현장과 멀어졌다. 파리 1대학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했던 김 PD는 현장은커녕 이론만 죽어라 팠던 것이다.

그러던 중 홍상수 감독이 '밤과 낮'(2007)의 프랑스 현지 연출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홍 감독과 처음 만나게 됐다. 김 PD는 미술 소품 담당으로 현장을 누볐다. 극 중 필요한 미술책을 위해 국립도서관을 돌며 200권을 빌렸다. 아기 침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5~6개를 구해놓기도 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직접 발로 뛰며 다 빌렸다.

"홍 감독님도 좋아했지만 현장에 있는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 후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홍 감독님을 만나 연출부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감독님께서 '영화 곧 들어간다'며 오라고 하더라. 박사 준비 과정에 있었는데 미련없이 짐을 쌌다."


■홍상수 '현장'과의 첫 만남

모든 걸 정리하고 들어왔으나 영화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릴 없이 시간만 보냈다. "감독님께서 미안했던지 '영화 감독이 꿈인건 알겠는데, 영화사 살림을 맡아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

이후 김 PD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제작실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하하하'로 PD 입봉했다. PD로서 첫발을 내디딘 하하하의 현장은 지금도 머리 속에 뚜렷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옥희의 영화'다. 김 PD는 "감독님께서 실험을 해보고 싶어하더라. 그래서 촬영, 조명, 녹음, PD 등 총 4명의 스태프로만 영화를 찍었다"고 기억했다. 지금은 10여 명 정도다.

"한번은 문성근 선배가 촬영 중에 안보이더라. 저 멀리서 촬영장 통제를 하고 계시더라. 매니저들이 큰 힘이 됐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부터 제작부가 없는 대신 매니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유준상씨 매니저는 여느 제작부 못지 않고, 정유미씨 이선균씨 등의 매니저도 저희 제작부라 할 수 있다.(웃음)"

■"행복해 할 수 있는 배우"

홍상수 영화에는 매번 비슷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정은채처럼 처음 홍 감독과 작업하는 배우들은 이목을 집중시킨다.

"가령 '20대 여배우 중 한 번도 같이 안해본 사람이면 좋겠다'고 하면 그 조건에 맞는 배우 중 어울릴 만한 사람을 추천하고, 감독님이 최종 결정한다. 이야기에만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 보다 현장에서 같이 행복해 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것 같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이후 홍상수 감독은 이미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우리 선희'다. 여기에서는 정재영이 처음으로 홍상수 영화에 발을 들였다.

"정재영씨는 유준상씨의 친한 지인이라 평소에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작품은 안했지만 레이더망에서 그리 먼 배우는 아니었다. 당시 '내가 살인범이다' 홍보 기간이었는데 그 사이사이 3일 동안 출연했다."

■독특한 촬영 방식, 일사분란한 오전

홍상수 감독은 아침에 대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누구도 영화의 전체를 알리 없다. 배우, 스태프 등 대본을 받은 직후 순간 집중력이 엄청나다는 게 김 PD의 설명이다.

"대본을 받으면 내가 할 것을 먼저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를 찍을 수가 없다. 배우들은 대본 외우기에 정신없고, 촬영 스태프는 그때서야 어떻게 촬영할지 고민하는 식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재미와 성취감, 쾌감이 엄청나다. 영화 속 추억은 나한테 있는데도 새로운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보통의 영화와 진행 순서도 다르다. 홍상수 영화는 제일 먼저 영화를 찍을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촬영 가능한 배우를 섭외한다. 배우가 결정되면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해외 영화제에 대한 기억

홍상수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를 안방 드나들듯 자주 찾는다. 2월 28일 국내 개봉될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역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영화제용 영화만 만드는 감독'이란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김 PD는 "영화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영화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영화제"라고 전했다.

"우리 영화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는 셈이다. 예전에 네덜란드의 한 교수가 영화제에서 홍상수 영화를 본 뒤 '한국에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영화 속 코스를 가르쳐 달라'는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영화를 전세계 어느 누군가와 연결시켜주는 고리역할을 하는 곳이다."

또 다른 기억은 '여행'이다. 해외 영화제를 통해 배우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다. 김 PD는 "해외 영화제를 가면 배우들과 같이 밥 먹고, 방도 같이 쓰면서 서로 못다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면서 더 친밀감이 생기는 것같다"고 밝혔다.

■감독의 꿈

김 PD의 오랜 꿈은 영화 감독이다. 파리 유학 중 4편의 단편영화를 찍었고, 한국에서도 틈틈히 단편 3편을 완성했다. 아직까지 세상에 공개된 적은 없다.

"내 영화와 감독님 영화 중 세상에 어떤 영화가 남는게 더 좋을까 생각하면 고민할 것도 없이 감독님 영화다. 제가 찍은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 용기를 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것같은데, 지금은 아니다. 어찌됐던 짝사랑하듯 평생 가지고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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